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동아 세포 마을] 면역력의 보고, 8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 대장

작성자
admin
2023-10-10
조회
137

면역력의 보고, 8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 대장


글|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콘텐츠에 대한 소감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대장입니다. 장 건강에 대해 말씀드릴 때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 얘기가 자주 나오죠? 장내 미생물과 미생물의 먹이라는 뜻인데요. 이런 장내 미생물의 대부분은 소장보다 대장에 살고 있습니다.


내 대장 속에는 미생물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요? 나와 같이 사는 미생물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수보다 10배나 많은 약 100조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무게는 1.3-1.5kg에 이른다고 하니 어마어마하죠? (그럼 내 몸무게에서 미생물 무게를 빼야 하나?) 그중 대장에 사는 미생물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니 대장에만 80조 개의 미생물…. 우주 하나가 들어 있었네요.우리 몸속이긴 하지만 전혀 무균답지 않은, 수많은 미생물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 바로 대장입니다.


대장 속 미생물들이 하는 역할은 예상하셨듯 한마디로 변을 만드는 겁니다. 대장은 소장을 통해 소화된 음식물을 이어받아 수분을 흡수하고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저장, 일부 분해를 거쳐 배설하게 됩니다. 소장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내려온 우리 몸에 유용한 전해질과 미네랄들이 장내 미생물을 통해 분해되어 우리 몸에 흡수가 되는 것이죠. 내 몸에 이로운 유익균이 유해균에 비해 많아야 건강이 유지되는 이유입니다.


그 균형이 깨지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장의 바깥인 복강은 무균의 공간이어야 하고 그 사이를 장벽이 막고 있는데 여러 유해균에 의해 약해진 장벽이 뚫려 세균에 의해 만들어진 유해 독소가 주위 조직과 혈류를 타고 흐르면서 질병을 일으킵니다. 대장의 벽에 손상이 오면 장벽이 붓고 염증이 생기면서 게실염이나 심한 장염이 발생하기도 하니 우리 장 내 유익균을 잘 보호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날 응급실에 설사를 주 증상으로 내원한 3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잘못 먹은 음식이 없는데 자주 설사를 하고 설사가 없을 땐 변비도 자주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간혹 혈변과 찐득한 점액 변도 보곤 했었는데 그냥 흔한 과민 대장 증후군(irritable bowelsyndrome)이겠거니 하고 지켜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심한 복통과 설사가 발생해 응급실로 내원한 것입니다.


복통이 심하고 복부 진찰에서 압통도 심한 편이어서 혈액 검사와 수액 치료를 한 뒤 복부 CT까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장염인지 아니면 충수염 같은 수술이 필요한 질환이 숨어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혈액 검사에서 높은 염증 수치가 나타났고 복부 CT 검사 결과에서는 대장 대부분이 부어 있고 특히 상행 결장이 부어 있는 소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수술은 필요 없지만, 금식과 수액 치료, 염증성 장 질환(inflammatory boweldisease)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입원 치료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염증성 장 질환


염증성 장 질환은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으로 대표되는 원인 불명의 만성 대장 질환입니다. 위의 사례처럼 단순한 장염이나 과민 대장 증후군으로 오인되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증상으로는 복통, 설사, 혈변, 체중 감소가 수개월에 걸쳐 나타납니다. 크론병은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 기관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 있고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 국한되어 생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병 원인이 불명확하지만 장내 세균, 유전 요인, 환경 요인과 면역 이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양에서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가설로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감염, 흡연, 소염진통제 사용이 국내 염증성 장 질환의 증가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염증성 장 질환이 의심되면 혈액 검사와 대장 내시경 검사로 진단을 해야 합니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증상이 악화하고 장폐쇄, 장천공, 대장암, 치루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치료는 적절한 항생제와 면역 조절, 스테로이드 등을 사용합니다. 약물 치료로 증상이 가라 앉으면 그 기간을 지속시키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합니다. 완치가 없는, 관리하는 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내 몸에, 내 장에 들어갈 음식물을 잘 고를 필요가 있습니다. 육류의 경우 공장식 축산, 또는 공장식 양식으로 길러진 육류와 어류는 다량의 항생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인 현미밥과 대장 내 유익균의 먹이가 될 섬유질이 풍부한 유기농 초록색 생채소를 꼭꼭 씹어 천천히 드실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벼운 감기에도 항생제 복용을 쉽게 결정하는 우리 문화도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 감기에서 보호자 분들이 강력하게 항생제 사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길게 보면 아이들의 장 건강을 악화시켜 면역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당장 빨리 낫는 것 같은 느낌에, 아니면 중환 질환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항생제를 쉽게 선택해선 안 되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음식을 잘못 먹고 속이 부글대거나 구토, 설사가 생겼던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염증성 장 질환과 같은 그런 상태가 몇 개월 이상을 지속한다고 생각하면 환자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불편을 줄지 상상이 됩니다. 건강한 식생활과 증상 발생 시 조기 치료로 건강한 장 상태를 유지하고 흡연, 음주, 소염진통제와 스테로이드, 항생제 사용을 가능한 한 줄여서 내장 속 80조 미생물들이 건강한 유익균으로 자리할 수 있는 장 상태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 동아약보 2023년 10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