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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세포마을] 복통, 흔하고 단순한 증세로 알면 큰코다칩니다

작성자
admin
2023-09-07
조회
134

[동아세포마을] 복통, 흔하고 단순한 증세로 알면 큰코다칩니다


글|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응급실에 오는 많은 환자분이 가장 흔하게 호소하는 증상이 무엇일까요? 응급실이니만큼 가장 위험한 질환으로 잘 알려진 심근경색의 흉통이나 뇌졸중의 반신마비를 떠올리실 수 있을 텐데요. 사실 가장 흔하게 응급실을 방문하는 이유는 복통, 우리말로 배앓이입니다.

응급실에 방문하는 수많은 다양한 증상 중 15% 가량을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니 많은 숫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복통’하면 음식을 잘못 먹고 발생한 장염을 떠올리실 텐데요, 이런 복통의 원인이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진단이 쉽지 않다고 하면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전공의 시절 이야기입니다. 권역 응급의료센터 역할을 하는 모교 병원 응급실은 항상 환자가 많아 정신없이 바빴지만, 저녁 때가 되면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평소 30개의 병상을 운영하는 응급실에 이송용 카트를 추가로 놓고 5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으니 말 다 했죠. 어느 날 저녁 정신없이 환자를 진찰하고 오더를 반복하던 중, 한 할아버지 환자가 접수하셨습니다. 복통과 설사 한 번을 주요 증상으로 내원하셨고 구토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배를 만져보니 꽤 벙벙하게 불러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곳저곳 배를 눌러봤을 때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심하지 않았고 배가 평소보다 불러 왔는지 물었을 때 평소에도 배는 불러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장에 염증이 생긴 단순 장염인가 보다 생각한 저는 혈액 검사와 탈수 보정을 위한 수액 치료, 통증 조절 주사와 함께 엑스레이 오더를 냈습니다. 이후에도 환자는 물밀듯이 계속 접수되고 있었고 다른 환자들을 진찰하고 오더를 내느라 할아버지 환자의 상태는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원래 응급실은 환자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자주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2차 평가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실시간으로 조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워낙 바쁘다 보니 환자의 상태를 중간에 확인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혈액 검사가 나온 순서대로 결과를 확인하고 그제야 환자의 상태를 평가해 퇴원 또는 입원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3~4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그렇게 한 명씩 검사 결과를 설명하며 바삐 움직이던 중 갑자기 상급년차 전공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CPR, 빨리 들어와!"

갑자기 안 좋은 사고라도 터졌나 싶어 들어간 침상에는 좀 아까 진찰했던 할아버지 환자가 의식 없이 축 늘어진 채 심폐 소생술을 받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초기 상태를 설명하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으니 환자가 기력이 없어 누워 있다가 불러도 반응이 없어 할머니께서 의료진을 부르셨고 그제야 심전도 모니터를 붙여 보니 이미 심장이 멈춰 있었다고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 상태에서 30분이 넘도록 심폐 소생술을 계속했지만 결국 할아버지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확인해보니 심전도에서 불규칙한 심방세동이라는 부정맥이 보였고 복부 엑스레이에서는 심한 장맛비가 확인되었습니다. 두 검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아마 할아버지는 단순 장염이 아닌 장간막 경색증이 왔었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패혈성 쇼크로 심정지가 왔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심장 안에서 부정맥으로 인해 피딱지와 같은 혈전이 생겼을 것이고 그 혈전이 머리에 뇌동맥으로 가면 뇌경색, 심장에 관상동맥으로 가면 심근경색이 되는데, 더 내려가 장간막 동맥으로 가면 장간막 경색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원활히 혈액이 가지 않으니 저산소증에 빠져 소장이 썩어버리는 것이죠. 썩어버린 소장에 있던 균은 장벽을 통과해 혈류를 타고 전신을 돌며 패혈성 쇼크, 균에 의한 독소로 전신 혈압이 떨어지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제가 진찰하고 치료하던 환자가 저의 부주의로 악화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좀 더 꼼꼼히 환자를 파악하고 중간에 검사 결과가 다 나오지 않았어도 미리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소중한 한 분의 환자를 잃고 나서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복통의 진단이 쉽지 않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셨을까요?

복강 내에는 여러 장기가 있습니다. 소장과 대장뿐 아니라 간, 쓸개, 위장, 비장, 췌장, 콩팥, 부신, 자궁, 난소 등등…. 이런 많은 장기가 모여 있다 보니 증상도 여러 가지이고 진단도 쉽지 않습니다. 젊은 나이에 가장 흔한 복부 질환은 위염, 장염과 함께 충수염이 흔하고 연세가 많은 환자일수록 각 장기에 발생할 수 있는 암과 같은 악성 질환 등을 감별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장 건강을 위한 저의 솔루션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소장과 대장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제각각 역할을 하며 우리 몸의 면역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에 따라 장 건강과 몸 전체의 면역, 그리고 세로토닌, 멜라토닌을 통한 스트레스 조절까지 결정이 되는데요. 그러므로 건강한 식습관을 통한 장의 건강은 단순히 체중 조절만이 아니라 내 몸의 면역력과 기분 조절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제일 중요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밥은 가공, 단순 당인 빵, 떡, 면이 아닌 현미밥을 강력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현미의 껍질에는 백미에선 얻을 수 없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고기보다 양질이면서 적당한 양의 단백질과 지방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초록색 채소를 꼭 챙겨 드셔야 합니다. 초록색 잎채소에는 흰색 뿌리채소보다 풍부한 양의 비타민과 무기질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한, 섬유질이 다량 있어 장에 들어갔을 때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주고 변의 양을 증가시켜주어 변비를 예방합니다. 장 건강의 필수 요소임을 백번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복통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식사와 관련이 없는 복통, 열이 나는 복통, 배가 불러오며 발생하는 복통, 누를 때도 아프고 눌렀다 뗄 때도 아픈 복통, 황달을 동반한 복통, 혈변이나 검은 변을 동반한 복통은 가능한 한 빨리 진료를 받고 원인 질환을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연세가 많을수록 위험한 질환일 가능성이 크므로 장염이겠거니 하고 약만 먹고 버티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동아약보 2023년 9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