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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맛+] 생명을 온전히 품은 60g 근육을 키우는 일등공신

작성자
admin
2023-12-13
조회
132
[건강한 맛+] 생명을 온전히 품은 60g 근육을 키우는 일등공신

글 | 박찬일/자유기고가

요즘은 근육 만드는 데 열심인 시대다. 개인 트레이너를 쓰기도 하고, 식이조절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단백질 보조제가 불티나게 팔린다. 지방은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닭가슴살이 인기다. 옛날에 근육 만들던 한국의 보디빌더들은 계란을 많이 먹었다. 닭가슴살이 우리나라에서 부위별로 따로 팔리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계란은 완전식품이라는 말도 있고, 콜레스테롤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루 한두 개는 괜찮다거나 환자는 주의해야 한다는 등 여전히 논란 중이다. 과거 군대나 공공병원에서 소모성 질환 입원 환자에게는 따로 계란을 더 제공하기도 했다. ‘영양식=계란’은 오랜 등식이다. 게다가 가격 대비 이처럼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로 경쟁자가 없고, 요리도 간편하고 다양하며, 맛도 좋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계란 예찬론자다. 두세 개의 계란을 거의 매일 먹는다.

최근 유명한 건강 매거진인 미국 <Men's Health>는 “The 25 Best Muscle Building Foods”라는 기사를 실었다. 근육 만들기에 열심인 남자 독자를 겨냥한 특집 기사다. 흥미로운 건 제1번으로 계란을 꼽았다. 역시! 계란의 특정 부분이 아니라 ‘whole egg'라고 되어 있다. 근육에 좋은 단백질이 많기도 하지만, 운동 후 근육 회복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인 ‘류신’이 많다고 쓰고 있다. 어쨌거나 계란은 근육에 여러모로 좋은 음식이 틀림없다.

계란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상황에 등장한다. 알은 탄생을 의미하고, 다산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닭이나 계란이 신화에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여러 국가 중에 신라는 알에서 비롯하는 탄생 설화로 시작한다. 1973년 경주 천마총을 발굴하는데 계란이 나왔다. 아마도 신성한 상징으로 부장했을 것이다. 서양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부활절에도 계란이 나오지 않는가. 어렸을 때 그 계란을 먹으러 교회에 가곤 했다.

계란은 생명의 견본이기도 하다. 불과 60그램도 안되는 무게 안에 생명의 가장 완벽한 단위가 존재한다. 품어주기만 하면(요새는 물론 인공적으로 해결하지만) 생명이 된다. 계란은 종종 우주에 비유된다. 노른자는 그 표면에 생명의 ‘씨앗’이 붙는데, 이것이 영양을 얻어 병아리가 된다. 흰자는 노른자와 생명을 보호하는 ‘바다’ 역할을 한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공간을 확보하고 완충 작용을 하며, 백혈구가 있어서 병균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렇게 부화되면 병아리가 되어 한 마리의 완벽한 생명체가 탄생한다.

 

계란은 여러 가지로 요리할 수 있다. 우선 날계란이다. 요새는 균이 걱정되어 먹지 않는 경우가 흔한데, 과거에는 영양식으로 날것을 즐겨 먹었다. 버터나 마가린에 간장을 끼얹어 계란 하나 깨어 넣고 비빔밥을 해먹기도 했다. 날계란을 즐기는 일본에 가면 계란간장비빔밥을 위한 전용 간장도 마트에 있다. 날계란으로 비비는 것이 걱정되므로, 나는 반숙이나 프라이한 계란을 비벼 먹곤 한다. 간장, 참기름, 약간의 채소나 콩나물 삶은 것을 넣으면 아주 맛이 좋다. 고기를 따로 챙겨 먹지 않아도 최소한의 근육에 필요한 단백질을 한두 개의 계란으로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프라이는 계란을 맛있게 먹는 좋은 방법이다. 그중에서 칼로리는 높아지지만 튀기듯 지지는 ‘크런치 에그’가 아주 맛있다. 과거 중국집에서 간짜장에 얹어주는 방식이기도 하다(아직도 부산 등지에서는 기본적인 서비스다). 온도를 높인 많은 양의 기름에 계란을 부쳐야 한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타고, 낮으면 바삭한 흰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온도를 잘 조절해서 바삭바삭하게 부치는 게 핵심이다.

유럽에서는 아침식사로 프라이를 많이 먹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영국이나 미국의 관습이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아침에 프라이를 먹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나 독신자가 ‘메인 요리’로 프라이를 해먹는 걸 본 적이 많다. 이탈리아는 코스 요리를 중시하는데, 파스타 뒤에는 고기나 생선을 먹는다. 그걸 살 돈이 없거나, 일부러 간단하게 먹고 싶을 때 메인으로 프라이를 부치는 것이다. 두 개쯤 부친 후에 치즈를 갈아 뿌리면 꽤 그럴싸한 메인 요리가 된다.

여전히 계란은 삶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요리법이다. 가장 빠르고 손쉽게 맛과 영양소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 기차를 타면 객차 내에서 삶은 계란을 팔았다. 톡톡, 껍질을 깨고 종이로 접은 소금 봉지를 열어 찍어 먹었다. 아니면 아예 삶은 계란을 어머니가 준비해 주기도 했다. 옛날엔 계란이 지금보다 물가 대비 상당히 비쌌다. 삶은 계란은 나름 귀한 요리였다. 80년대 이후에 계란이 흔해지면서 삶은 계란은 여행의 필수 음식에서 사라졌다.

계란은 말거나 찜으로도 먹는다. 여러 가지 부재료, 채소를 넣어서 영양의 균형을 꾀한다. 계란말이는 도시락 반찬의 인기 품목이었고, 시중 백반집의 주인공이었다. 계란을 말아낼 손이 부족해진 요즘은 귀한 음식이 되고 있다. 대신 찜은 간단하고 손이 많이 가지 않아 더 많이 팔린다. 안주로도 인기다. 매운 닭발을 먹고 계란찜으로 달래는 것은 이제 인기 궁합이 되었다. 김을 내뿜으며 이른바 뚝배기에 끓이는 활화산 계란찜도 유튜브를 타고 널리 퍼지고 있다.

계란을 가장 사치스럽게 먹는 방식은 다른 고급 재료를 더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식재료로 알려진 철갑상어알(캐비아)을 올린 삶은 계란은 프랑스식 고급 만찬에 나오기도 한다. 세계 3대 진미라고 하는 송로버섯을 갈아서 올린 계란프라이는 한 접시에 몇 만원을 호가한다. 집에서 간단히 송로버섯향이 나는 기름인 트러플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려 프라이를 하면 꽤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200ml 한 병에 2~3만원이면 마트나 인터넷에서 살 수 있으며 오랫동안 쓸 수 있다. 물론 천연 송로버섯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 동아약보 2023년 12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