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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치의] 1명의 천재 vs. 집단지성

작성자
admin
2021-10-26
조회
483

밸런스 게임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이 “●● vs. ■■”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르라는 게시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소위 ‘밸런스 게임’이라고 해서, 극단적으로 하나의 선택지만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관념적 취향 혹은 논리(?) 대결 게임이다. 예컨대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느냐, 소스를 부어먹느냐(찍먹 vs.부먹)’와 같은 원초적 명제가 주어지기도 한다. 어느 선택지에 월등히 유리하거나 불리해서는 안 되게 균형을 맞추어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이 놀이의 묘미다. 학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밸런스 놀이 중에 하나가 바로 문제 해결 능력에 관한 ‘1명의 천재 vs. 집단지성’의 선택이다. 뛰어난 개인과 다수 개체의 협업 사이에 어느 쪽의 지능이 더 나은지에 관한 질문이 되겠다. 이와 관련해 최근 몇 백 년간의 ‘집단지성’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가 PNAS 학술지에 발표되어 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1)


 


집단지성의 힘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 전, 우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집단지성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얻게 되거나 더욱 배가되는 집단적인 지적 능력을 의미하며, 이 용어가 처음 출현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다. 매우 오래된 용어로,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개미나 꿀벌의 집단적 사회생활, 새나 물고기 떼의 움직임 등은 개체 하나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2)

일찍이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는 협업을 기본으로 하는 집단생활을 통해 효율적으로 먹이를 얻고 거대한 개미집을 건설하는 개미의 모습을 관찰한 뒤, 개미는 개체로서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군집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지능 체계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러한 집단지성의 개념을 담아 1910년에 출간한 책 『개미:그들의 구조, 발달, 행동(Ants:Their Structure, Development, and Behavior)』은 그후 사회 전반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는 1994년 사이버 공간의 집단지성 개념을 정리했다. 그는 집단지성에 대해 “그것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이라고 정의했다.3)

집단지성에 관한 초기 연구는 1907년에 프란시스 갈톤(Francis Galton)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시장에 있는 소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프란시스 갈톤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의 무게를 맞춰보라고 물어봤다. 다수가 1,207파운드(약 547kg)로 추측했는데, 실제 무게는 1,198파운드(약 543kg)로 추측치와 불과 4kg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구슬의 수’라는 실험이 있다.4) 한 교수가 유리병에 유리구슬 850개를 넣고 학생들에게 보여준 다음 구슬의 총 개수를 맞춰보라고 했는데, 학생들 답변의 평균값은 871개였다. 그러나 전체 학생의 답변 중 평균값보다 정확하게 맞춘 답변은 없었다고 한다.


 


집단지성의 우위

다시 논문으로 돌아와, ‘집단지성이 한 명의 천재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결과를 살펴보자. 크리스토프 리들 교수는 1,356그룹 및 5,279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및 22개 연구물들의 결과를 메타분석했다. 실험 방법은 여러 그룹에 다양한 미션을 주고 이에 대한 테스트 결과를 확인했다. 참가자들은 창의력 테스트, 텍스트 빨리 입력하기 등 단순 작업과 같은 여러 미션(수행과제)을 수행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미션에서 집단지성이 승리했다. 즉 개인들의 능력이 높다고 해서 그룹의 성과가 높게 나오지 않았다. 딱 한 가지 경우에만 개인의 능력이 더 높게 발휘됐는데, 혼자 조용히 구석에서 숫자 퍼즐을 풀어야 했던 ‘스도쿠(Sudoku)’ 퍼즐 미션에서만 예외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는 5천 명이 넘는 사람들(5,279명)을 연구했는데, ‘n’수가 큰 연구(Large scale)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림1]집단지성에 대한 각 미션 메타분석의 표준화된 요인 로딩들(Standardized factor loadings of the meta-analysis of each task on the first factor (CI)), 출처: 전게논문


 


집단지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집단지성과 친밀도와 관련해 참가자들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모르는 사이인지(즉 실험에서 처음 만난사이) 여부는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 만난 사이인지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이인지 여부도 집단지성에 큰 영향이 없었다. 즉 친밀도가 낮은 경우에도 개인의 성과보다 집단의 성과가 우수했다. 한편 연구 결과에서 흥미로운 점은 집단 중에서도 여성 참가자의 비율이 높은 집단이 더 성과가 높았다는 것이다. 동성 그룹보다는 혼성 그룹에서 성과가 더 좋았고, 그룹 내 여성 참가자의 비율이 높을 수록 성과가 높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각 그룹의 성과는 ‘노력’, ‘조직력’, ‘전략’에 의해 결정됐다고 한다. 다만 처음 만난 그룹은 ‘노력’을 많게 하든지 적게 하든지 상관없이 노력의 효과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결국 서로를 알고 있는 동시에 ‘노력’을 많이 하는 그룹일수록 집단지성의 효과가 극대화됐다. 반면 처음 만난 그룹에는 ‘노력’의 요소보다 서로를 어떻게 알아가고 ‘조직’하며, 어떻게 ‘조율’하는지 여부가 중요했다고 한다.


 


집단지성의 문제점

그렇다면 사람이 모이면 언제나 집단지성이 발휘되나? 구성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달라진다. 일부 구성원의 정보 조작, 결과물에 대한 사적 이용, 선동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할 수 있는 구성원들(소위 목소리 큰 사람)의 수준이 떨어지면, 집단지성의 질도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집단지성 5가지 필수조건

그렇다면 집단지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갖춰져야 하나?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집단지성의 5가지 조건을 이야기했다.5)


01 다양성(Diversity) 다양한(성별, 나이, 직업, 취미, 가치관 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02 독립성(Independency) 타인에게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종의 비밀투표).

03 분산화(Decontralization)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한곳에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04 통합(Gathering) 분산된 지식이나 경험이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05 신뢰(Trust) 집단지성이 통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결국 종합하면,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독립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신뢰해 그 의견을 통합할 때 1명의 천재보다 더 나은 수행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겠다.




집단지성의 활용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1명의 천재 vs. 집단지성”의 밸런스 게임은 집단지성 쪽으로 밸런스가 기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늘날 팀워크의 결실이자 집단지성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위키피디아, 구글과 같은 성공 사례는 얼마든지 확인된다. 물론 배심원제도나 과거 뉴턴이나 맥스웰과 같은 독보적인 천재 물리학자들의 사례는 밸런스 게임의 반대 선택지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밸런스 게임에서 집단지성의 판정승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집단지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신이 아닌 이상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집단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들의 지혜, 지식, 경험을 존중하고 이를 하나로 모아 조직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열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 Christoph Riedl, “Quantifying collective intelligence in human groups”, PNAS 2021 Vol. 118 No. 21 e2005737118.

2) 최성우, “새로운 연구 방식인 ‘집단지성’”, The Science Times, 2019. 06. 21.

3) 위키백과, “집단지성” 참조.

4)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 『The wisdom of Crowds』(대중의 지혜), 2004.

5)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 전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