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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주치의] 페니실린과 피임약의 발명

작성자
admin
2021-10-26
조회
529

페니실린과 피임약의 발명


글| 안미람 약사


의약품의 발명은 인류의 수명뿐만 아니라 생활방식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현재 당연하게 사용하는 다양한 약들이 없는 삶을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나요? 인류의 삶과 병에 인식, 인간의 역사까지 바꾼 대표적인 약의 발명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페니실린이란?

페니실린은 최초의 항생제입니다.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발견했으며,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힙니다. 세균과 같은 미생물은 많은 질환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이런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세균성 질환 치료의 가장 핵심인데, 이에 대한 해답을 페니실린을 통해 최초로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당시 플레밍은 포도상구균(화농성염증질환, 폐렴, 식중독의 원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실험을 진행 중이었으며, 그의 실험실은 세균 배양 접시로 가득했습니다. 조금 게을렀던 플레밍은 세균 배양 접시를 방치해 두고 창문을 열어 둔 채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때마침 플레밍 연구소의 아래층에는 푸른곰팡이 연구가 한창이었습니다. 이 푸른곰팡이의 포자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플레밍의 포도상구균 배양 접시 위에 떨어지게 됐는데, 휴가를 다녀온 플레밍은 특이한 점을 발견합니다. 푸른곰팡이 포자가 닿은 부분에만 세균이 번식하지 못하고 녹아 있던 것이지요. 동료들은 제대로 배양기에 넣어 두지 않아 휴가 기간 중 오염이 되어 쓸모없다고 치부했지만, 플레밍은 이 특이한 현상을 좀 더 연구하기로 합니다. 그 결과 정말로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항균 작용을 한다는 것을 입증해냈습니다. 추가 연구 끝에 모든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며,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라는 종류의 푸른곰팡이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성분이 포도상구균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분의 이름을 페니실린으로 명명하게 됩니다.


 푸른곰팡이(흰색 원)의 주변에만 포도상구균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누군가는 이 발견을 두고 ‘하필이면 그 많은 푸른곰팡이 중 페니실린을 만들어내는 곰팡이가 우연히 포도상구균 배양접시에 앉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동료들과는 달리 진지하게 파고든 그의 학구열과 의지가 있었기에 우연한 기회는 놀라운 발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후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생산과 상용화에 성공해 많은 전쟁 부상자와 전염병 환자들을 구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한 플레밍, 페니실린의 상용화 방법을 고안해낸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언스트 체인(Ernst Chain)은 1945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피임약이란?

최초의 피임약은 1957년 간호사인 마가렛 생어(Margaret Sanger)에 의해 발명됐습니다. 피임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야 했으며, 이는 여성의 삶과 사회 활동의 큰 제약일뿐만 아니라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마가렛이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에 어느 날 임산부가 실려왔습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내로 가정 형편 때문에 아이 갖기를 거부했으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스스로 유산을 시도하다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피임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지만, 당시 피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 여성은 또다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유산을 시도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20세기 초 미국 여성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출산이었으므로 이러한 안타까운 임산부의 죽음은 매우 빈번했습니다.




마가렛 생어(Margeret Sanger)(좌), 최초의 피임약 에노비드(Enovid)(우)


마가렛 생어의 어머니 또한 11명의 자식을 낳았고 7번의 유산 경험이 있었으며 일찍 사망했습니다. 이를 딸이자 간호사로서 지켜본 마가렛은 여성에게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마가렛 생어는 계획적인 출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산아 제한 운동을 시작했으며, 여성 인권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권 운동 중에 만난 캐서린 맥코믹(Catherine Mccormack)과 그레고리 핀커스(Gregory Pincus)는 함께 본격적인 피임약 연구에 돌입합니다. 기존에 상용되던 프로게스테론 제제는 자궁 출혈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는데, 또 다른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혼합해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최초의 피임약 ‘에 노비드(Enovid)’ 발명에 성공합니다. 임상 시험이 시작되자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수많은 여성 지원자들이 참여했고, 2천 명의 참여자 중 피임 실패율은 단 1%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기록하며 FDA 승인을 받아 냈습니다. 이를 계기로 1965년 미국 대법원은 피임을 합법화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점차 여성의 생존율과 사회 참여 비율이 높아지는 시발점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