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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주치의] 인류 문명의 발달과 평화를 염원한, 알프레드 노벨

작성자
admin
2021-10-26
조회
489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노벨상의 기원

인류 문명의 발달과 평화를 염원한, 알프레드 노벨


매년 10월 초가 되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12월 10일이 되면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해마다 누가 노벨상을 받을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은 어떤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일까?


 


삶은 숭고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삶이라는 보석은 인간이 갈고 닦아야만 한다.

갈고 닦아 나오는 빛이 그 보상을 해 줄 때까지 말이다.

-알프레드 노벨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노벨은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과학적 재능을 보였다. 8세 때 페테르부르크에서 초등교육을 받았고, 1850년 독일, 프랑스, 미국을 유학하면서 화학과 기계공학을 배웠다. 그후 폭약 제조 일을 하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며 폭약을 개량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1863년 아스카니오 소브레로가 발명한 니트로글리세린과 흑색 화약을 혼합한 폭약을 발명했고, 뇌홍(雷汞)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공업화 과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듬해 폭발 사고가 일어나 그의 막냇동생과 종업원 4명이 사망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이 액체였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규조토에 스며들게 해서 고형 폭약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다이너마이트다.




노벨상의 탄생

그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투자자를 모아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875년에는 젤라틴 형태로 된 폭약을 개발해 또 다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879년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던 두 형과 바쿠 유전에 투자하여 세계적인 석유 생산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은퇴 후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살았고 그곳에서도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으며, 한 평생 355개의 특허를 획득했다. 1896년 12월 10일 그는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고, 1897년 1월 2일 그의 유언장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는 유언장을 1895년 11월에 작성했으며, 유산의 일부를 한 재단에 기부하여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생리학, 의학 등 전 분야에 걸쳐 가장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유언장이 공개된 후 유산 문제로 일가 친척은 물론이고 스웨덴 내부에서도 비난이 잇따랐지만 유언장을 토대로 노벨 재단이 세워졌고, 1900년 7월 29일 스웨덴 정부의 공인을 받은 후 1901년 12월 10일 첫 노벨상 시상식이 거행됐다.


 


다이너마이트와 노벨상

다이너마이트는 기존의 폭약보다 강력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채굴, 건설 산업 등에 유용했으나 전쟁의 무기가 되면 생명을 앗아가는 수단이 되었으므로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발명품이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가 도구에 불과하며 그것을 선악의 기준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봤지만,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의 사망을 자신이 죽은 것으로 잘못 보도한 기사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라는 제목을 본 후 충격을 받아 자신의 전 재산을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쓴 사람들에게 수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다이너마이트와 노벨상은 인류의 발전을 위한 한 인물의 고뇌에서 나온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인류는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