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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Park의 사교성]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즐기다

작성자
admin
2021-07-26
조회
555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즐기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표현의 사자성어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유래

논어에서 공자가 ‘고진감래’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도종의’라는 농부가 있었는데 공부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종이와 먹을 살 돈이 없었지만,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숯으로 먹을, 나뭇잎으로 종이를 대신하여 글을 쓰면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생계를 위하여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는데, 여기서 고진감래가 나온 것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소개하게 된 배경

인생의 중년에 접어들면서 가만히 돌아보니 제 인생이 결코 평탄치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지인들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남들에게 잘 일어나지 않은 일이 너무 흔히 일어나고, 고생스러운 일들이 인생 초년기에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버티면서 살아 온 이유 중 하나는 몸소 고진감래를 체험한 것에 있습니다.




박 과장의 고진감래[苦盡甘來]

저에게 2002년 8월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경험을 한 때입니다.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전,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다른 교육대로 입소하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교육생 대표를 맡게 되었고, 힘든 훈련을 거쳐 마지막 관문인 행군과 야간 침투훈련을 하기 위해 군장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한낮의 온도가 34도를 넘어가고, 훈련을 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회의를 거듭하다 전쟁에는 계절이 따로 없다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오후 1시부터 행군을 개시하였습니다. 완전 군장 20kg을 짊어진 채 한낮에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훈련병이 대다수였습니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쓰러지는 훈련병이 속출하였고, 극한의 훈련 상황에 다들 동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육생 대표인 저 역시 혼자서 몸을 가누기 쉽지 않은 조건이라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훈련이 끝나면 초코바를 먹을 수 있을 거야’, ‘차가운 물도 마실 수 있을 거야’ 등 정신적으로 즐거운 상상을 하며 행군을 이어 나갔습니다. 다행히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고, 동기들 군장도 하나 더 들어주면서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고, 짐을 풀고 밥을 먹었습니다. 




▲ 전역하는 날 동기와 함께(왼쪽 박선집 과장)


운이 좋게도 제가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훈육관님은 퇴소 며칠 전 자대로 오셔서 저에게 특별 표창장을 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무언가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고, 훈육관님은 이번에 받은 훈련처럼 매사 최선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진감래처럼 인생을 살아가라고 조언해주신 훈육관님 덕분에 저는 무사히 군 생활을 마쳤습니다. 가끔 훈련소부터 자대까지 같이 배정된 동기와 식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힘든 추억과 함께 고진감래를 떠올리며 지금껏 살아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타임머신이 생겨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고진감래의 의미를 안다고해도 훈련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야약보 독자님들도 삼복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고,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