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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치의]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작성자
admin
2021-07-26
조회
989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1987년작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그의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ōgitō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를 차용한 것으로, 미국의 소비 사회를 비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올 당시 ‘소비 사회’는 부정적 이미지로 평가된 듯하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쇼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쇼핑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쇼핑의 행복과 뇌과학

인간은 대개 쾌락과 이익을 극대화하고, 고통과 손실을 극소화하기 위해 행동한다. 따라서 소비자는 가격 비교 혹은 물질적 유인과 같은 경제적 요소를 고려하여 쇼핑을 하기도 하지만, 감정과 느낌에 따라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또한 특정 상표와 상점에 대해 의도적으로 탐색하여 적극적·능동적 구매를 하기도 하는 반면, 마케팅 자극에 노출되어 정보의 탐색이나 평가 없이 수동적으로 소비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의 소비 행동을 정형화된 형식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소비를 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쇼핑은 참 즐겁다’는 것이다. 소위 지름신(?)과 함께라면 짜릿함도 배가 된다. 이처럼 쇼핑을 하면 ‘행복’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쇼핑을 하면,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로, 분비가 되면 의욕과 흥미가 생기고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반대로 도파민이 부족하면 파킨슨병이나 우울증, 조현병 등이 발병하기도 한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쇼핑도 마찬가지다. 도파민은 중독과 크게 관련이 있는 물질인데 쇼핑 중독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편, 뇌의 특정 영역이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나 소유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와 기계공학과 이필승 교수의 공동연구팀은 2018년 생쥐 동물실험을 통해 ‘전시각중추(MPA)’라고 불리는 뇌의 시상하부 중 일부가 먹이를 획득하거나 소유하려는 본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


생쥐의 뇌에서 특정 유전자(CamK2-a)를 발현하는 전시각중추 신경을 빛으로 자극하자 쥐는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 집착하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이를 관찰한 연구팀은 전시각중추 신경이 ‘수도관주위 회색질(PAG)’로 흥분 신호를 보내 이상 행동을 만들어내는 기작을 규명하고, 이것을 엠피에이-피에이지(MPA-PAG) 신경회로라고 이름 붙였다. 반대로 이 회로를 억제하면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사라졌다.


어찌 보면 인간은 뇌의 특정 영역의 기전이나 도파민의 작용 등을 통해 물건에 대한 호기심과 소유욕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쇼핑으로 인한 행복은 내가 쇼핑에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응당 반응하는 공통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무의식과 ‘지름신’의 만남

실제 우리의 소비 행동은 95% 이상 무의식이 결정한다고 한다. 2) 즉, 우리가 쇼핑할 때는 합리적이거나 의식적인 상태에서 하기 보다 뇌의 무의식 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의식적 소비 행위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오감자극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후에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합리화하는 과정이 발생한다. 


“‘아! 저 물건은 내가 필요한 거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은 망가졌고, 새로운 물건이 필요해, 저것이 있으면 나는 훨씬 더 일을 잘 할 수 있어’라는 식의 여러 가지 합리화가 일어나면서 내 의식이 무의식이 하고자 하는 소비를 점차적으로 합리화해준다. 많은 부분들이 무의식적인 자동을 겨냥해서 우리가 소비하도록 하는 마케팅이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


한편,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는 뇌의 깊숙한 ‘편도’라는 부위에 저장된다. 편도는 대뇌번연계의 감정 조절을 담당한다. 바로 이 편도가 자극을 받을 때 소위 말하는 ‘지름신’이 강림하게 되고, 편도에 자리 잡은 브랜드를 보면 우리 뇌는 ‘자동모드’가 된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쇼핑은 사실 감정입니다.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일 뿐 결국 우리의 소비 습관을 지배하는 것은 감정이죠”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우울할 때는 쇼핑을!

이렇듯 소비는 무의식과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런던대학교 애드리언 펀햄 교수는 첫째 불안할 때, 둘째 우울할 때, 셋째 화가 났을 때, 소비가 더 쉽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드대학교 제니퍼 러너 교수는 슬픔이 소비자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우선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은 평화로운 풍경의 비디오를, 다른 그룹은 슬픈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 후 플라스틱 물통을 보여주고 그것을 얼마에 사겠냐고 물었다. 평화로운 풍경을 본 사람들은 평균 2.5달러를, 슬픈 영화를 본 사람들은 평균 10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슬픈 영화를 본 사람들은 왜 4배나 많은 돈을 내겠다고 했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실연이나 슬픈 감정을 느낄 때면 평소보다 더 간절히 물건이 갖고 싶고, 더 많은 돈을 내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이 전혀 의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공허감 때문인데, 슬픔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상실이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제니퍼 러너 교수


한때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이 모두 함께 교복처럼 입고 다닌 아이템이 있다. 바로 ‘노스페이스’ 패딩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는 쇼핑의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바로 ‘사회적 배척’에 대한 불안감이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다 소비하고 있으면, 사회적으로 배척되지 않기 위해 나도 사서 입어야 한다. 이처럼 불안, 우울, 화남, 소외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쇼핑의 목마름

안타깝게도 쇼핑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도파민의 장난일지도 모르겠지만 소비로 인한 행복감은 그때일 뿐이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극이 필요하다. 여기 ‘소비와 행복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 있다.


아이들 12명을 뽑아 6명씩 두 팀으로 나눈 다음, 모두에게 5만 원씩 똑같은 돈을 주고 서로 다른 소비를 하게 했다. A그룹은 5만 원으로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B그룹은 여행을 떠나 5만 원으로 다양한 체험을 했다. “이 기분이 언제까지 갈 것 같으냐?”는 질문을 통해 소비의 만족도와 행복도를 조사했다. 소비 직후 처음 반응은 비슷했지만, 3주 후에는 B그룹이 만족도도 높고, 행복도도 높게 나타났다(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 EBS 공동연구). 한마디로 물질에 돈을 쓰는 소비보다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에 투자하는 쪽이 훨씬 더 오래 기억되며, 그 만족감과 행복감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에 대한 정답이 어디 있겠냐마는,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 삶의 경험을 쇼핑하는 것이 그 정답에 가까워지는 길임은 분명하다.


 


1) 이근영, “뇌에서 쇼핑중독 관련 부위 찾았다”, 한겨레 2018. 3. 15.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36227.html#csidx724c3a16e328fea908d18a100eba88c

2)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2015. 221p 이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