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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치의] 내가 뭘 검색하려고 했지?

작성자
admin
2021-05-31
조회
159

내가 뭘 검색하려고 했지? 


기억의 저편 


‘그 뭐냐’, ‘그 뭐지’, ‘음...’ 궁금한 내용을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을 띄웠다가 무엇을 검색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특히 재밌는 소식이나,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신상(?) 소식이 인터넷 검색 창 옆에 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와 같은 증상을 빗대어 신조어로 ‘인터넷 미아 증후군’이라고 한다. 지금 ‘그 뭐냐’를 검색창에 치면 필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분들을 확인할 수 있다(동지들과 함께라서 안도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일들은 꼭 인터넷을 검색할 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대화 중에 자신이 하려던 말이나 이름 등이 기억나지 않거나, 대상은 떠올랐으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설단(舌端) 현상’이라고 한다. 


설단 현상(Tip of the Tongue phenomenon, TOT phenomenon)이란 완전한 단어를 떠올릴 수는 없으나, 비슷한 형태와 의미를 지닌 단어는 기억해 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1) 말 그대로 ‘혀끝에서 맴도는 말’이다. 


설단 현상은 일반적으로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발생이 증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령의 증가에 따라 일반명사(Common Noun)보다 고유명사(Proper Noun) 인출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설단 현상이 일반명사에 비해 고유명사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연령에 따른 차이 외에도 사람, 장소, 사물 이름, 동사, 형용사와 같은 세부적인 단어 범주에 따라 발생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기억 인출의 오류 


기억은 크게 “정보의 부호화(Encoding) → 저장(Storage) → 인출(Retrieval)” 세 가지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인지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2) 이러한 기억의 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망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부호화가 부적절하거나, 저장 도중에 정보가 왜곡되거나, 인출 단서가 부적절하면 기억을 찾아 끄집어낼 수가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망각은 하나의 기억 인출 장애로 기억의 다른 측면이다. ‘인터넷 미아 증후군’과 같이 우리가 어떤 내용을 갑자기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결국 입력 실패가 아닌 인출 실패를 의미한다. 


만약 기억 인출에 오류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아주 단적인 예로 ‘목격자에 의한 범인 식별 사례’를 들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목격자(혹은 피해자)에게 범죄 용의자의 사진을 보여 주며 범인을 확인해 줄 수 있겠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기억 인출에 적절하지 않은 방법이다. 우리 법원은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범인 식별 절차에서,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는 방식이나 한 명의 용의자 사진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하여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방식의 목격자 진술은 신빙성이 낮다고 본다.3) 사람 기억력의 한계와 부정확성은 물론이고, 이러한 방법은 구체적인 상황 아래 용의자나 그 사진 상의 인물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인 식별 절차에서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하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른다. 


 


➊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의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한 다음, 


➋ 용의자를 포함하여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하여야 하고, 


➌ 목격자와 용의자 및 비교 대상자들이 사전에 상호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➍ 사후에 증거 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질 과정과 결과를 문자와 사진 등으로 서면화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사진 제시에 의한 범인 식별 절차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따라야 한다. 자칫 기억의 인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억울한 시민을 희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억 인출의 교정과 해결책


인출 실패로 인한 설단 현상은 대개 인출 단서(retrieval cue)를 제공해 주면 쉽게 교정되는데, 그것은 설단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사람들은 그 단어가 몇 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발음되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예상 외로 처음 학습할 때 연합을 이루었던 단서나 목록을 찾아내면 기억 인출이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4)


예를 들어 사건이 발생한 장소, 사건이 일어난 집의 구조, 사건 당시 범죄자와 주고받던 단어나 대화의 톤 또는 게임, 범죄자가 들려주었던 노래, 범죄자 내지 피해자가 입었던 의상, 냄새 등 당시의 사건 상황을 최대한 재구성하고 단서를 제시할 수 있다면 신기할 정도로 생생한 회상이 가능하다. 


처음으로 사건 정보를 학습한 ‘맥락’ 역시 효과적인 인출 단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초기 정보의 학습 상황과 유사한 설정을 해 주면 행위 상황도 잘 기억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기억 항목이 부호화될 때 그것과 함께 부호화됐던 여러 단서들이 회상 시에 복원되면 회상 확률이 높아진다는 원리로서 ‘부호화 특정성 원리’(encoding specificity principle)라고 한다.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방금까지 했던 행동을 거슬러 가서 다시 해보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출 단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1)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①기억하는 것과 ②인출하는 것


2)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③기억하는 것과 ④인출하는 것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배운 내용(③)을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기억 인출(②<④)을 더 잘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즉, 술에 취할 때 경험했던 것이 술만 마시면 다시 떠오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확한 단어를 기억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억 인출을 반복하거나 메모를 남기는 등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과 망각의 경계


우리는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시험 공부, 기념일, 오늘 할 일을 위해 기억의 스위치를 켜고, 슬픈 일, 괴로운 일은 망각의 스위치를 켠다.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기억과 망각은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오류투성이인 인생을 여러 번 되돌아보게 하는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1) 이예니, 최소영, “청년과 노인집단에서 어휘 특성에 따른 설단 현상 발생 및 해결 양상의 차이”, 한국언어청각임상학회, 2016. 140면

2) 신영호, “범죄심리학”, 한국학술정보, 2021, 86면

3)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도7033 판결

4) 신영호, “범죄심리학”, 한국학술정보, 2021, 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