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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주치의] 이웃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故 이태석 신부

작성자
admin
2021-05-31
조회
575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다 


이웃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이태석 신부


사회적 가치, 사회적 기업, 사회적 책임 등 사회와 함께하는 일을 도모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다. 사회를 위한 일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일을 몸소 실천하며 행복의 답을 일깨워 준 이태석 신부의 삶을 떠올려 본다. 


 


이웃을 위한 삶을 생각하다 


이태석 신부는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본 후 그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고, 군 복무를 하면서 신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군 복무 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아프리카 케냐로 갔다가 수십 년간 내전이 계속되었던 수단으로 건너가 의료 활동을 시작하였다. 


 


사랑의 씨앗을 뿌리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에서 그는 한센병, 결핵, 말라리아 등으로 고통받고 있던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지를 돌며 이동 진료를 하기도 했다. 또한 오염된 물로 전염병에 노출된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팠고, 극심한 내전과 가난으로 꿈을 꾸지 못한 미래 세대를 위해 손수 학교를 지었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던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상처받은 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다. 그는 톤즈의 아버지로서 의사, 신부, 교사, 건축가 등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보여 주었다. 


 


사랑의 꽃을 피우다 


수단 현지 사람들은 그를 세례명 요한(John)과 성씨 이(Lee)를 붙여 ‘쫄리’라 부르며 따랐다. 그런데 그는 2008년 휴가 차 한국에 들어왔다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고,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0년 1월 14일 48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말기 암 선고를 받고도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봉사 활동과 후원을 독려하였다. 종교를 초월하여 인류애를 실천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 


 


“Everything is good.” 


 


모든 것이 좋았다고 할 만큼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태석 신부를 본받아 그의 제자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은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한 후 의사가 되었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 『울지마 톤즈』로 만들어졌고, 후속작으로 2020년 영화 『부활』에서는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꽃으로 피어났으며, 그의 삶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