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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세포마을] 술과 간

작성자
admin
2023-01-10
조회
138

술과 간


글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연말 연초에는 술을 마시다 넘어져 다치고, 싸우고, 교통사고가 나는 등 여러 사고를 겪은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옵니다. 그중 과도한 음주로 구토를 하던 환자가 뇌리에 박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토혈을 하는 환자를 급히 이송 중이니 응급 처치를 준비해 달라는 119 상황실 연락을 받았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구급 대원들의 표정과 환자의 모습은 한눈에도 심각한 상황임이 역력했습니다. 환자는 고개를 숙이고 비닐봉지에 연신 구토를 해 입 주위가 온통 피투성이였고 눈 흰자에는 황달이 끼고 피부는 혈색 없이 하얬습니다. 맥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혈압이 떨어져 있었고 온몸은 축축이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단시간에 너무 많은 피를 토해 순환 혈액량이 급속도로 감소하며 저혈량성 쇼크와 위장관 출혈이 온 것으로 의심됐습니다.


보호자의 말에 따르면 환자는 평소에도 술을 좋아해 소주를 안 마신 날을 세는 게 더 쉬울 정도로 만성 알코올 의존증이었습니다. 며칠간 연달아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구토를 시작하더니 세숫대야를 채울 정도의 검붉은 피를 쏟아냈습니다. 환자는 알코올성 간경변증에 의해 부풀어 오른 식도 정맥이 터져 상당한 출혈로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도 보호자는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이었습니다. 만성 알코올 환자의 보호자는 이런 응급 상황을 여러 번 겪어 익숙한 경우가 많고 쳇바퀴 돌 듯 오랜 투병으로 옆에서 간병하며 환자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의 양쪽 팔에 최대한 굵은 혈관을 잡고 수액을 다량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팩의 수혈을 준비하며 빠른 수혈을 위해 중심 정맥관을 잡기로 했습니다. 식도 출혈 부위를 찾아 지혈하기 위해 응급내시경이 필요함을 소화기내과에 알렸습니다. 환자는 혈압이 떨어지면서 체온 유지가 되지 않는 지 식은땀을 흘리고 몸을 심하게 떨었습니다. 환자가 도착한 지 겨우 10여 분에 불과했지만 출혈량이 너무 많은 나머지 수액을 빠르게 공급해도 혈압 이 올라가지 않았고, 결국 환자의 심박동이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는 의료진이 응급 처치할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인공호흡과 심폐 소생술을 했지만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고, 30여 분간 심폐 소생술을 하는 사이 냉정함을 유지하던 보호자는 갑자기 무너지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잘 넘기고 집에 갈 줄 알았더니 오늘은 그냥 가네...”


자신의 간 건강을 위해 즐거운 분위기에서 소량의 음주만 허락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현재 음주 상태를 체크해 볼까요? 알코올 의존증을 판단하는 기준은 술을 마시는 빈도와 음주량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의학적으론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으로 나뉘는데, 알코올 남용은 중독 전 단계, 알코올 의존은 심각한 중독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알코올 남용의 진단 기준]


아래 중 1가지 이상이 지난 12개월 사이 있었던 경우


1. 거듭되는 알코올 사용으로 직장, 학교 혹은 집에서 의 주요 역할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


2. 신체적으로 해가 되는 상황에서도 거듭된 알코올 의 사용


3. 알코올과 관련된 거듭된 법적 문제


4. 알코올의 영향들이 원인이 되거나 이로 인해 사회 적 혹은 대인관계 문제가 계속적/반복적으로 악 화됨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의 계속된 사용


 


[알코올 의존의 진단 기준]


아래 중 3가지 이상이 지난 12개월 사이에 있었던 경우


1. 내성이 있다(점점 많이 마셔야 만족).


2.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손떨림, 불면증, 식은땀, 환시, 환청 등).


3. 술을 원하는 양보다 오랜 시간 많이 마신다.


4. 금주/절제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5. 술을 구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술에서 깨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 비한다.


6. 사회적, 직업적 혹은 휴식 활동들이 술로 인해 단념되거나 감소 한다.


7. 음주에 의해 신체적 혹은 심리적 문제(위궤양, 대인관계 등)가 악 화되는 줄 알면서도 음주를 계속한다.


 


만약 본인 또는 가족, 동료가 위 진단 기준에 부합한다면 대화를 나눠 지금 마시는 술이 환자 본인과 가정, 사회를 파괴하고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이미 본인 의지로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소화기내과 진료를 통해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간경화와 관련된 위험한 합병증의 증거, 토혈이나 혈변, 검은 변, 복수, 황달이 발생한다면 즉시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검은 변은 위장관 출혈의 단서이므로 빠르게 응급실을 방문해야 합니다. 환자는 일반적으로 알코올성 간염, 간경화, 비타민 부족 등 내과적 질환을 먼저 치료하고 정신과적 상담과 치료를 진행합니다. 약물의 도움을 받거나 필요에 따라 수액 치료, 입원 치료를 합니다. 술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벗어나 금단 증상으로 힘든 시기를 잘 넘기도록 주변을 둘러보고 도움의 손길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 동아약보 2023년 1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