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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치의] 눈알굴리기로 2022년 맞이하기

작성자
admin
2021-12-27
조회
573

 눈알굴리기로 2022년 맞이하기


흔히 이불킥이라고 하던가. 부끄러워서 도저히 상상하기도 싫은 순간들. 수치스러운 기억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행동들. 대개 한 번쯤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공포스러운 기억, 끔직한 기억과 같이 우리 인생에서 다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부정적인 기억들도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기도 한다. 그런데 혹시 ‘눈알굴리기’ 치료법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눈알굴리기’만으로 괴로운 기억들을 날려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일단 믿고 필자를 따라와 보자.




눈알굴리는 EMDR


눈알굴리기는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정식 심리치료기법이다. 조금 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안구운동 민감소실 재처리요법’(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 소위 ‘EMDR’이라고 표현한다.1)


EMDR의 본론부터 말하자면, 나쁜 기억을 떠올리면서 안구를 좌우로 움직이면, 뇌에서 그 기억을 다시 처리하면서 괴로운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금 이쯤에서 어디서 유사과학을 들먹이는지 필자를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랬으니…




1987년 산책도중 우연히 발견!


미국의 프랜신 샤피로(Francine Shapiro) 박사는 1987년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눈을 빨리 움직이니까 고민하던 부정적이고 기분 나쁜 생각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너무 신기해서 더 오래된 과거의 일, 부모와의 문제를 떠올리고 다시 시도해 보았는데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곧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실험을 해 보면서 이러한 결과에 한층 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이 방법을 “EMD(Eye Movement Desensitization, 안구운동 민감소실)”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다가 1990년 재처리과정(reprocessing)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안구 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림 1. Francine Shapiro, Ph.D., is the originator and developer of EMDR.


이후 샤피로 박사는 EMDR이 베트남 참전 용사와 성폭행 피해자들이 앓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질환(PTSD)의 증상을 감소시키는지 그 영향을 연구하였다. 이 새로운 치료 방법이 연구 대상자가 사고 장면을 순간적으로 재현하거나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는 것을 줄어들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1989년부터 EMDR은 전 세계의 훈련받은 임상 연구가에 의해 발전되어 오고 있으며, 다양한 증상의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선택되고 있다.


2004년에는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발행된 PTSD 진료 지침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 중 하나로 선택되었다. 이처럼 EMDR은 효과가 빠르고 치료 기간이 짧아 치료자와 환자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2)


 


치료 원리는 무엇인가?

치료 원리는 안구 운동과 같은 양측성 자극을 주어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을 활성화시켜 기억의 처리가 다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경험은 뇌의 정보처리계(Information processing system)를 통해 처리되면서 미래의 학습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보 기억으로 전환되어 대뇌 피질에 저장된다. 하지만 어떤 끔찍한 사건이나 충격적인 경험은 우리 뇌의 정보처리계를 교란하고 마비시켜,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뇌의 변연계(편도체)에 저장된다. 즉 처리되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그 당시의 장면, 소리, 냄새, 생각, 느낌, 신체 감각 등의 단편적인 형태로 남아 그대로 신경계에 “얼어붙은 채,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EMDR 치료는 얼어붙어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단편을 떠올리고, 안구 운동과 같은 양측성 자극을 주어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을 활성화시켜 기억의 처리가 다시 일어나도록한다. 샤피로 박사는 이를 활성화된 정보 처리 과정(Accelerated Information Processing)이라고 하였다.




[그림 2] 좌우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빛 자극을 사용해 공포 기억 반응을 유발 또는 감소시키는 원리3)


과학자들은 EMDR에서 우뇌와 좌뇌가 동시에 자극을 받으면, 두 신경 네트워크 사이의 연결 교류가 강화되면서 감정과 인지가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었다. 즉, 이런 안구 운동이 렘(REM)수면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뇌를 자극해 기억의 재처리를 유도한다는 가설이다. 사람의 뇌는 매일 밤마다 5~6번 정도 렘수면을 거치면서 기억을 처리하고 있는데, 이 렘수면의 특징이 바로 빠른 안구 운동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규명한 한국 과학자들

이처럼 뒷받침할 과학적인 원리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던 가운데, 세계 최초로 한국 과학자들이 EMDR 심리 치료법을 실험으로 입증하였다.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 연구팀은 트라우마 치료법 중 하나인 EMDR이 실제로 공포 반응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동물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4)

연구진은 우선 트라우마를 겪는 동물 모델을 만들었다. 쥐에게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 자극을 주어 같은 소리만 들어도 전기 자극에 대한 공포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이 쥐를 좌우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빛으로 자극해 EMDR 치료를 했다. 그 결과 같은 소리가 났을 때 쥐가 나타내는 공포 반응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도 공포 반응이 재발하지 않았다. 또한 연구진은 뇌 영역 중 공포 기억과 관련된 새로운 신경 회로도 찾았다. 행동 관찰 실험과 신경 생리학 기법을 활용한 결과, 눈이 시각적 자극을 받으면 신경 신호가 상구(눈 운동을 조절하는 영역) 및 기억 억제에 관여하는 중앙 내측 시상핵과 감정 처리에 관여하는 편도체를 거쳐 공포를 인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EMDR은 공인된 치료 행위로서 EMDR 치료법을 다룰 수 있는 치료자가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유튜브에 자미 마리취 박사(Dr. Jamie Marich)가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을 상대로 8단계로 나누어 EMDR을 실시하는 영상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참고하시기 바란다.


EMDR 영상 치료 영상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맞이하는 자세! 여러분들에게 2021년은 어떠했나? 아마 COVID-19로 대다수에게는 아쉬운 한 해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입시나 취업 문제로, 말하지 못할 가정사로, 혹은 건강 문제로 모두 괴로운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 배운 ‘눈알 굴리기’ 치료법을 떠올려보며, 괴로운 기억은 잊고, 2022년 새해는 즐거운 기억들로 다시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1) http://www.emdr.com/what-is-emdr/

2) “EMDR의 역사”, http://seoulemdr.co.kr/sub/sub_03_02.php 이하 참조.

3)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6803 이하 참조.

4) 이정아, “머릿속 공포 기억, 시각 자극으로 지운다”, 동아사이언스, 2019. 2. 14.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6803 이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