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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주치의]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밤길을 거닐다

작성자
admin
2021-03-30
조회
694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밤길을 거닐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는 혼자 달빛을 조명 삼아 밤길을 거닐면서 중얼대기 시작했다. 


“’밀다’로 할까 ‘두드리다’로 할까? 다른 더 좋은 말은 없나?”


가도는 달빛에 떠오른 감정을 거침없이 시로 써내려 갔지만,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밤길을 혼자 거닐기 시작했다. 너무나 시에 몰두했을까? 가도는 바로 앞으로 높은 관리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그의 행차를 막아버렸다. 높은 관리를 호위하던 시종들은 가도를 붙잡아 그의 무례함을 꾸짖었다. 다행히도 높은 관리는 송나라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한유(韓愈)였다. 


한유는 내세울 배경이 없었지만, 끝없는 노력 끝에 어렵사리 관직에 올랐기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시종들에게 끌려온 가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유는 자신의 행차를 가로막은 이유를 가도에게 물었다. 그러자 가도는 놀라운 말을 전했다. 본인이 달빛을 거닐며 시가 떠올랐으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다가 한유의 행차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유 역시 시인이었기에 가도의 시를 청하여 들었다.


 


閑居隣竝少


(한가로이 혼자 머무니 함께하는 이웃도 드물고) 


草徑入荒園 


(풀이 우거진 마당은 숲 속 오솔길로 이어지네) 


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어 있고) 


僧敲月下門 


(스님은 달 아래 고요히 문을 두드리는구나) 


 


가도는 두드린다는 구절에서 고(敲)로 할까, 퇴(推)로 할까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드릴 고(敲)’를 쓰면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가 되고 ‘밀 퇴(推)’를 쓰면 “스님이 문을 밀었다”라는 뜻이 되기에 어느 글자가 더 좋을까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유는 가도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 한마디를 건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길을 갔다고 한다. 


“여보게, 그건 두드릴 고(敲)로 하는 편이 낫겠네.” 


‘퇴고’라는 말에 글을 쓰는 의미의 한자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고 마지막으로 다듬는 행위로 ‘퇴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가도와 한유의 사연에서 온 것이다. 필자는 이 내용을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 선배로부터 듣게 되었다. 평소 성격이 덜렁대서 실수를 많이 저질렀고 그날도 여지없이 오자투성이 보고서를 선배에게 들이밀었다. 그때 그 선배는 가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가도가 단 한 글자를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것처럼 어떤 일을 하든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디테일을 놓치는 순간이 간혹 있지만, 그 당시 선배의 말은 잊지 않고 사는 것을 보니 나에게는 크나큰 가르침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선배는 필자에게 한유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