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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세포마을] 1분 1초에 심장이 쫄깃해지다 ‘심혈관 질환’

작성자
admin
2023-04-11
조회
92

1분 1초에 심장이 쫄깃해지다 ‘심혈관 질환’


글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라고 모두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경우는 아닙니다.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 중 약 70%는 정말 긴급을 요하는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조사도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응급실에서 가장 긴급한 환자는 누구일까요?


 


응급실, 얼마나 위중한가에 따라 순차 진행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기 전, 접수와 함께 먼저 진행되는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중증도 분류’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응급의료기관에서는 진료 전 필수로 중증도 분류를 진행해야 합니다. 의료진은 응급실 입구에서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에 따라 환자를 분류하는데요. KTAS는 환자의 혈압, 맥박, 체온과 함께 주요 증상을 입력하면 이 환자의 중증도가 대략 어느 정도 된다는 것이 통계로 나오는 도구입니다.


KTAS level 1은 소생,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즉시 의료진이 투입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되어 바로 처치를 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심정지, 무호흡, 음주와 관련 없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KTAS level 2는 긴급, 생명 또는 신체 기능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상태로 심근경색, 뇌출혈, 뇌경색 등이 해당합니다. 심정지, 무호흡, 무의식을 제외하고 응급실에서 가장 중요한 질환은 3대 중증 질환으로 심근경색, 뇌졸중, 중증 외상이 있습니다. 이 중 심근경색을 포함한 심혈관 질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든 올 수 있는 질환 ‘심혈관 질환’


어느 날 밤 환자 진료를 보던 중 쾅쾅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필자가 고등학생 때 진학과 관련해 많은 도움을 받은 은사님이 서 계셨습니다. 깜짝 놀라 어찌 된 영문인지 물으니 아드님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아드님이 갑자기 심한 흉통을 호소하고 식은땀이 발생해 119를 부를 정신도 없이 제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로 데려왔던 겁니다. 즉시 심전도 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급성 심근경색이 발견됐습니다. 은사님도 심혈관 질환 과거력이 있어서 얼마나 응급한 상황이었는지 단번에 아셨던 것입니다. 보호자인 은사님께 설명하면서 아드님께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릴 때 더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심혈관 시술팀을 호출해 신속히 진행한 결과, 아드님의 막힌 혈관을 뚫고 흉통이 호전되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심전도 검사: 피부에 전극을 부착하 여 심장에서 나타나는 전기적 활성도를 감지, 모눈종이에 선으로 기록하는 검사 방법


심혈관 질환은 심장 근육에 영양분을 주는 세 갈래의 관상동맥, 즉 심혈관이 좁아져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이 혈관들이 좁아지는 이유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이 있으며 혈관 벽이 딱딱해지면 혈관 안쪽으로 피딱지가 엉겨 붙으면서 심혈관 질환이 발생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수도 파이프가 오래되거나 녹이 슬면 그 주위로 물에 있는 금속성 무기물들이 엉겨 붙으면서 점점 좁아지는데요. 그 좁아진 정도에 따라 안정 협심증, 불안정 협심증, 심근경색 등으로 나뉩니다.


 



협심증


먼저 협심증은 보통 심혈관이 50% 내외로 좁아진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증상은 흉통입니다. 많은 환자분들께서 가슴을 쥐어짜는 듯하거나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시간은 대개 1분에서 5분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호전되는 경우가 많고 운동을 하거나 계단을 오를 때 더 자주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등과 어깨, 턱이나 팔로 통증이 이어지는 방사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좌측 흉통에서 협심증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지만 최근 논문에 따르면 좌측 흉통이나 우측 흉통이나 발병 비율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흉통의 위치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서둘러 응급실에 방문하실 것을 권합니다.


 


불안정 협심증


불안정 협심증은 보통 심혈관이 90% 가까이 좁아졌을 때 나타나게 됩니다. 협심증 같은 증상이 30분 이상 지속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심한 경우에는 혈압이 떨어지거나 불규칙하게 심장이 뛰는 부정맥이 잠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응급의학과에서는 불안정 협심증에 대해서 심근경색과 같은 치료로 대응할 정도로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흉통이 1분에서 5분 내에 오는 안정 협심증 상태에서도 빨리 병원을 찾아와야 하지만 5분을 넘어서는 흉통이 발생하면 지체 말고 119 구급차를 통해서 안전하게 응급실에 와야 합니다. “난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한두 번 지나치다 보면 의료진이 처치할 수 있는 선을 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심근경색


심근경색은 혈관이 좁아진 상태에서 혈관 안쪽에 상처가 생겨 염증 반응이 갑자기 진행되어 심혈관이 완전히 막히거나 몸 어딘가에서 생긴 작은 혈전(피딱지) 같은 것이 심혈관을 완전히 막아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가슴 통증 양상은 코끼리가 발로 밟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보통 나타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특히 당뇨가 오래되거나 연세가 많으신 경우에는, 별로 아픔을 못 느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현장에서 바로 사망하거나 이송 중 사망할 가능성이 30%, 병원에 도착해서도 치료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30% 일 정도로 위험한 질환입니다. 위기를 넘겨서 살아남더라도 심장 근육이 일부 죽어서 괴사가 진행되면 심부전과 같은 합병증으로 환자분들이 평생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24시간 비상 대기 중인 병원들의 심뇌혈관센터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준비해서 30분에서 한 시간 안에 심혈관 조영술과 스텐트 삽입술*을 진행해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스텐트 삽입술: 협착된 부위의 혈류를 개선시키기 위해 혈관에 도관을 삽입 후 풍선 확장술을 시행하고, 스텐트(그물망)를 설치하여 혈관 내경을 넓히는 시술


 


심혈관 질환의 신호와 치료


심혈관 질환의 전조 증상은 역시 흉통, 가슴 통증입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술, 담배, 비만, 가족력, 40세 이상 등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분이 계단을 걸어 오르면 가슴이 뻐근하고 조여 오는 느낌을 받을 때 지체 말고 심장내과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통증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더 심한 날에는 바로 119에 연락해 즉시 응급실에서 치료받아야 합니다.


치료 방법은 질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요. 한 줄로 정리하면 골든 타임인 1시간에서 3시간 이내에 빨리 병원에 방문해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것입니다. 심혈관 질환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전도를 찍어서 어떤 부위가 어느 정도 막혔을지 대략적으로 판단합니다. 응급처치로 심혈관 확장제를 쓰면서 시간을 벌고 동시에 심혈관 조영술로 좁아지거나 막힌 혈관을 찾아 풍선확장술*로 열어주고 스텐트 삽입술로 다시 막히지 않게 조치합니다. 이후에 심부전이나 재협착이 오지 않게 약물 치료를 병행합니다.


*풍선확장술: 허벅지 동맥을 따라 와이어를 삽입한 후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 부위에 맞춰 풍선을 부풀려 주어 혈관을 뚫은 후 스텐트를 삽입해 혈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시술



심혈관 질환은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드물지 않습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심혈관 질환이라는 불상사가 우리 가족에게도 올 수 있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께서도 꼭 염두에 두었으면 합니다.


※ 동아약보 2023년 4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