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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치의]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고?

작성자
admin
2023-01-10
조회
136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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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감정을 신체에 빗대어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배알이 뒤틀리다(미움)’, ‘가슴이 미어진다(슬픔)’, ‘애가 타다(걱정)’, ‘손에 땀을 쥐다(긴장)’, ‘부아가 나다(화남)’. 특히 이러한 표현들 가운데 유독 ‘간( 肝 )’과 관련된 표현들이 많다. ‘간이 콩알만 해진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벼룩의 간을 내어 먹을 놈’, ‘간에 기별도 안 간다’ 등. 이처럼 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한국인들을 위해 이번에는 간과 관련된 표현의 과학적 근거를 찾아 떠나보자.



1.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음식을 먹으면 식도를 거쳐 위로 가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왜 위에 기별도 안 간다고 하지 않고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할까?


간은 복부 오른쪽 위, 횡격막 아래에 위치한 적갈색을 띤 장기로,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장기다. 간은 소화 작용, 호르몬 대사, 해독 작용, 살균 작용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체의 중요한 장기 중 하나다. 간은 4개의 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동맥과 간문맥으로부터 혈액을 공급받는다. ¹


섭취한 음식물은 위와 장과 같은 소화 기관을 거쳐 흡수된 영양소가 간으로 전달되는데, 소화 작용 메커니즘 순서상 먹은 것이 적으면 에너지와 영양소가 간으로 전달되는 양도 일정 비율만큼 줄어든다. 특히 음식물이 위장관을 통과하려면 크게 두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하는데, 첫째 난관은 위장관에 잘 흡수될 수 있는 형태(용해)가 되도록 잘 녹아야 하는 것이고, 둘째 난관은 일종의 장벽 역할을 하는 위장관막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때문에 음식물은 100% 흡수되지 않는다(다른 시각에서 보면, 몸에서 이물질을 걸러 주는 훌륭한 방어 시스템이기도 하다). 즉, 영양소가 이러한 위장관의 장벽을 넘어 간으로 이동하기까지 일정 부분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에, 결국 간에 도달하는 영양소는 먹은 음식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음식을 조금밖에 먹지 못해 성에 차지 않았을 상황에서는 정말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수 있다. 


선조들이 간에 대해 생리학적·해부학적 지식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음식이 일단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가서 간에 도달하기까지 그 양이 일정 비율로 감소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림 1] 투여된 약물이나 음식물이 순환계로 진입하기 전에 위장관과 간에서 대사되어 생체 이용률이 감소한다(First-pass effect: 초회 통과 효과). ; https:// namu.wiki/w/%EC%B4%88%ED%9A%8C%20 %ED%86%B5%EA%B3%BC%20 %ED%9A%A8%EA%B3%BC


 






[그림 2] F(=Fa × Fg × Fh, 생체이용률)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100mg을 먹었을 때 소화관 내강과 장 상피세포, 간을 순차적으로 통과하여 전신 순환혈에 도달하는 분율을 계산하는 예; http://pipet.or.kr/books/ pharmapk/principle.html


 



2. 간이 콩알만 해진다고?


간이 크다. 간이 작다. 간이 콩알만 해진다. 간이 부었다. 대담하다. 담력이 세다. 이러한 표현에서 살펴보듯이, 간이나 담은 ‘겁’과 관련성이 있다.


간이 실제로 작아지거나 커지기도 하나? 의학적으로는 간경화가 일어나면 간이 작아지게 되고, 반대로 간에 지방이 끼면 지방간이 되어 간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주로 간과 관련된 표현은 한의학에서 나온 관점으로 파악된다. 간이 작다(담력이 약하다)는 말은 실제 간이나 담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 아니라 간이나 담의 기운이 부족하거나 약하다는 말이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여러 감정과 정서의 발현에 따른 장부(장기)가 배속되어 있어서, 장부의 허와 실이 정서와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따라서 해당 장부의 허와 실에 신체 증상이나 습관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인식한다.²


간은 한방에서 장군지관(將軍之官)이라고 표현한다. 적과 싸워야 하는 용감한 장군의 역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간이 허하면 상황의 변화에 따른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을 쉽게 느끼며, 사람에 대한 낯가림도 많다. 한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황제내경>에 따르면, 간에 혼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는데, 간이 떨어질 뻔했다는 것은 혼이 나가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많이 놀랐다는 말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을 내서 기가 거슬러 올라가 내려오지 않으면 간을 손상시킨다고 했다. 이러한 간은 肝苦 急(간고급)하고 努傷肝(노상간)하다고 한다.³ 간은 급한 것을 고통스러워하고 노하는(성내는) 것이 간을 상하게 한다.⁴ 한편, 간장을 이롭게 하는 음식으로는 모과, 밀, 부추, 자두 등이 있다고 한다.


담은 중정지관(中正之官 올바르고 강건하여 사사로운 뜻을 두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관직)으로 결단을 내리는 장부, 결단지관(決斷之官)이라고 표현한다.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선택과 과감한 결단을 한다는 말이다. 담이 약하면 주저하거나 망설이게 되어 우유부단해진다. 담은 음식물을 소화하는 작용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작용해 결단력이 담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담력이 있다’ ‘대담하다’고 할 때도 같은 ‘담(膽)’ 자를 쓰게 된다. 사리에 맞지 않고 줏대 없이 행동하는 이에게 ‘쓸개 빠진 놈’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결단을 주관하는 담, 즉 쓸개의 특성 때문이다.⁷ 놀라거나 무서움을 당하면 담이 상한다고 보는데, 얼굴이 퍼렇고 희게 되는 것은 담이 무서움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림 3] 족궐음간경(인체에 분포되어 있는 십이정경의 하나로 간 및 담·폐·위·신·뇌 등과 관련된 경맥), 대한경락사협회 그림 참조


간과 담은 오행 중에서 나무(木)의 기운을 가진다. 봄날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활력과 힘을 만들어주는 구실과 추진력을 의미한다. 경락학적으로는 엄지발가락-생식기-간으로 흐르는 족궐음간경이 튼튼한 사람이 용기와 결단력이 있고 시원시원하며 두둑한 배짱을 지녔다. 군가를 부르면서 옆구리에 손을 얹고 부른다거나, 싸우거나 공격적인 태세를 할 때 옆구리에 손을 얹는 것은 그러한 제스처들이 족궐음간경과 표리 관계에 있어 옆구리 쪽을 흘러 지나가는 족소양담경의 에너지가 충만해지기 때문이다.⁸


명나라 때 유명 작가 풍몽룡(馮夢龍)이 쓴 책에 이런 말이 전해진다. ‘간이 크면 온 천하를 다 돌아다닐 수 있지만, 소심하면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다’(大膽 天下去得, 小心寸步難行 - ‘警世通言’).⁹ 덩치는 작아도 간과 마음은 커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정말 간이 콩알만 해지는지 살펴보았다. 몸속의 오장육부를 감정의 상태에 연결지어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무척 놀랐을 때 간이 콩알만 해지는 경험을 했으며 공포의 감정을 간담(肝膽)이 서늘해지는 것으로 느끼고 표현했다. 선조들의 과장(誇張)된 해학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지만, 생동감을 일으키는 과학적 고찰의 결과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출처>


1) 서울아산병원 의료정보;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body/bodyDetail.do?bodyId=1

2) 옥상철, “내 아이 겁이 많은 이유는”, 경남도민일보, 2012.06.19.; https://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889, 이하 참조.

3) 이성우, “肝者 將軍之官 罷極之本 (간자 장군지관 파극지본)”, 한국기독신문, 2018.02.25. ;http://www.kcnp.com/news/view.php?no=3309

4) 이창열, “[우리말과 한의학] 간이 크다”, 2011. 02. 14.,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463352.html, 이하 참조.

5) 박재만, “간이 콩알만해지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2006. 11. 20.; http://www.consumer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38

6) 임성호, “담대한 결단‘ 쓸개의 역할, 인저리타임, 2018. 12. 10., https://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11677

7) 각주 4) 참고.

8) 각주 4) 참고.

9)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04/2008110401456.html


※ 동아약보 2023년 1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