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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치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성자
admin
2022-03-29
조회
358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커다란 진주 귀걸이, 푸른 스카프와 붉은 입술, 뒤돌아보면서 말을 거는 듯한 묘한 동작. 그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그림을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년~1675년)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Het Meisje me de Parel,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다(그림 1).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가 아닐까 하는데, 오묘한 분위기의 그림만큼이나 비밀로 가득한 그림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호기심 가득한 과학자들은 이 그림을 현대 기술로 분석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이 그림을 따라가보자.



[그림 1] “Het Meisje me de Parel”, Copied from Mauritshuis website, resampled and uploaded by Crisco 1492


 


그림에 얽힌 미스터리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로드비히 골드샤이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가리켜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평한다. 또한 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그림은 여전히 강력한 신비를 내뿜고 있다. 소녀의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코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라고 평을 하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눈썹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오묘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에 대한 앞선 평가가 몸소 와 닿는다.

어두운 배경 속 소녀는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으며, 소녀의 눈과 붉은 입술은 흰색 반점으로 섬세하고 독특하게 강조되어 있다. 황토색 드레스와 푸른 스카프 장식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눈물방울 같은 진주 귀걸이에 반사된 빛은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채색되어 그 신비함을 더한다. 모나리자처럼 뚜렷한 윤곽선이 없는 입술은 관람자에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장된 얼굴 표현이나 두상을 부각해 그린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를 트로니(Tronie)라고 한다. 당대에는 이런 트로니가 많이 제작되었고, 주로 화가들이 연습 삼아 상상의 인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이 그림도 이러한 장르 중 하나다.1)

한편, 그림의 표현뿐만 아니라 사연도 흥미롭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페르메이르가 그린 3~4개밖에 되지 않는 상반신 인물화 중 하나다. 이 그림에는 오직 “IVMeer”라는 서명만 있을 뿐, 작품 연도가 기입되어 있지 않다. 작품이 의뢰에 따라 그려진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며 만일 의뢰를 받은 그림이라면 누가 의뢰했는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소녀가 누구인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그림의 모델이 페르메이르의 큰 딸 마리아일 것이라 추측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페르메이르의 후원자 페테르 반 라이벤의 딸 막달레나라고 추측한다.2)

무엇보다 허름한 복장을 한 소녀가 값비싼 진주 귀걸이를 차고 있다는 점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소설의 작가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해, 이 소녀는 어떻게 해서 페르메이르의 모델이 되었는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작가적 상상력을 이용해 그림의 모델을 페르메이르와 사랑에 빠지는 하녀 그리에트로 설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화가 페르메이르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11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지며, 가난하여 매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학자들의 호기심


이처럼 이 그림은 작가와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만으로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018년 2월~3월, 과학자, 보존가 및 연구원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이 이 그림을 현대 기술로 분석했다. 그리고 2020년 연구진은 새로운 발견을 발표했다. 사실 이 그림에 대한 정밀 조사는 이미 25년 전에 진행된 바 있지만, 최근 조사는 더욱 고도화된 과학 기술을 통해 화가가 어떻게 이 작품을 완성하였는지, 어떤 안료를 사용했는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답변을 얻기 위해 시작됐다.3)


 


작품의 배경색은 검은색이 아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 배경에 대조되는 밝은 빛의 얼굴은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인물화에 어두운 배경을 적용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페르메이르를 포함한 네덜란드 화가들도 이러한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4)

그러나 연구 결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이 그림의 배경이 단순히 빈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커튼이 접힌 모습이 발견되어, 페르메이르는 녹색 커튼을 바탕으로 소녀를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수 세기에 걸친 반투명 녹색 안료의 물리적·화학적 변화로 커튼의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그림 2 참조).



[그림 2] “New discoveries and insights from the international scientific examination”, (인용: 미주 1 참조)


 


헤드 스카프에 사용한 금보다 비싼 안료


한편 연구진은 페르메이르가 사용한 컬러 팔레트를 식별하고 매핑(mapping)했다. 매핑 결과 페르메이르는 오늘날 중미, 영국, 아시아 및 서인도 제도 등 전 세계에서 건너온 다양한 색상의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헤드 스카프와 재킷에 사용한 ‘울트라마린’ 컬러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지역의 경사면에 있는 몇 개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청금석(lapis lazuli)에서 온 것임이 확인됐다.

청금석은 희소한데다, 채굴이 힘들고, 고온에서 가열한 후 가루로 분쇄를 해야 더욱 깊은 푸른색을 얻을 수 있어 추출 과정 역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페르메이르가 활동하던 17세기, 울트라마린 컬러 안료는 금보다 더 가치 있는 가장 비싼 안료였다(그림 3, 4 참조).



[그림 3] 소녀의 파란색 머리 스카프 [그림 4] 아프가니스탄산 청금석


 


트로니인지 초상화인지? - 소녀는 속눈썹이 있다


이 그림을 위해 한 소녀가 실제로 앉아서 포즈를 취했을 수도 있지만, 기미, 흉터, 주근깨가 보이지 않아 실재(實在)하지 않는 초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육안으로 볼 때, 소녀는 속눈썹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구진은 엑스레이(X-ray)와 디지털 현미경 검사 결과 페르메이르가 두 눈 주위에 작은 털을 그렸다는 것을 밝혀냈다(그림 5 참조).

소녀의 눈에서 속눈썹을 발견했다는 것은 트로니가 아닌 실재하는 인물의 초상화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소녀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물론 아쉽게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림 5] 왼쪽: 140배 확대(1.1μm/픽셀)에서 소녀의 오른쪽 눈을 보여주는 3D 디지털 현미경 사진, 오른쪽: 철(Fe)에 대한 매크로 X선 형광(MA-XRF) 지도는 페르메이르가 갈색 페인트를 사용하여 속눈썹을 칠한 것을 보여준다. 변색된 어두운 배경에 대해 속눈썹 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진주 귀걸이는 귀에 거는 고리가 없다


연구진은 캔버스에 소녀를 그린 순서도 밝혀냈다. 페르메이르는 녹색 배경과 소녀의 얼굴 피부를 칠한 후 노란색 재킷, 화이트 칼라, 머리 스카프 및 ‘진주’를 차례로 그렸다. 그런데 진주는 흰색 페인트의 투명과 불투명 터치로 된 환상(illusion)이며, ‘진주’를 귀에 걸 수 있는 고리가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그림 6 참조).



[그림 6] 140배 확대(1.1μm/픽셀)에서 진주를 보여주는 3D 디지털 현미경 사진


 


숨겨진 페르메이르의 서명


연구진은 페르메이르가 “IVMeer”라는 표기를 사용하여 왼쪽 상단 모서리에 자신의 작품에 서명했음을 확인했다(그림 7 및 8 참조). 물론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서명이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아 생긴 일화도 있다. 이 그림은 미술 수집상 안드레스 데스 톰베(Des Tombe)가 경매장에서 2길더(과거 네덜란드 화폐 단위)에 매입한 것으로 1881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미술 전문가였던 데스 톰베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후 데스 톰베는 이 그림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1902년 그가 사망한 후로 그림은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 7] 동그라미로 표시된 위치에 숨겨진 페르메이르의 서명 [그림 8] 칼슘(Ca) MA-XRF 지도의 베르메르 모노그램


 


예술을 만나는 과학


350년간 소녀의 비밀이 연구진의 도움으로 한 꺼풀 벗겨진 듯하다. 예술은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사람들에게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과학 역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앞에서 하나의 예술로서 우리와 소녀를 이어주고 있다.


 


1) https://www.mauritshuis.nl/en/our-collection/restoration-and-research/closer-to-vermeer-and-the-girl/girl-with-a-blog/ 이하 참조

2) 데이비드 S. 키더,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153p, 이하 참조

3) https://www.mauritshuis.nl/en/our-collection/restoration-and-research/closer-to-vermeer-and-the-girl/girl-with-a-blog/ 이하 참조

4) 디자인프레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숨겨진 비밀은?”, 2020. 5. 7. 이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