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어른이 문화약국] 단팥 할머니가 들려주는 인생의 은은한 단맛

작성자
admin
2022-02-25
조회
363

단팥 할머니가 들려주는 인생의 은은한 단맛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2015)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일본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 이 작은 가게 사장 ‘센타로’는 매일 무의미하게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한 할머니가 가게 앞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보고 자신도 일할 수 있는지 묻는다. ‘센타로’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며 거절을 하고, 도라야키 한 개를 주며 할머니를 돌려보낸다. 나중에 다시 가게를 찾아온 할머니는 아까 받은 도라야키를 먹어봤는데 빵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단팥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단팥을 50년간 만들어왔다는 할머니는 단팥은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본인이 만든 팥소를 사장 ‘센타로’에게 건넨다. ‘센타로’는 무심하게 할머니의 팥소 통을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궁금한 마음에 다시 파토 통을 꺼내 맛을 본다. 팥소를 맛보고 충격을 받은 ‘센타로.’ 가게를 자주 찾는 단골 소녀 ‘와카나’에게 이 얘기를 전하자 소녀는 말한다. “그럼 기회를 드려요. 일하고 싶어하시는데.” 그렇게 사장 ‘센타로’는 할머니를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게 된다.


“인생마다 사정이 있지. 열심히 살아보자고. 나도 열심히 할게”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중


할머니의 이름은 ‘도쿠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도쿠에’ 할머니는 그동안 ‘센타로’가 업소용 단팥을 써 도라야키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도쿠에’ 할머니는 도라야키의 생명은 팥이라며, 11시 가게 시작 시간에 맞춰 해가 뜨기 전에 단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달이 뜬 새벽, 사장 ‘센타로’는 처음으로 직접 팥소를 만들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게로 향한다. ‘도쿠에’ 할머니는 팥을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다루며 팥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팥소가 완성된다. ‘센타로’와 ‘도쿠에’ 할머니는 둘이 처음 만들어 본 단팥을 넣은 도라야키를 한입 베어 물고는 미소 짓는다. 바뀐 단팥 맛에 대한 호응은 컸고, 가게는 손님들이 줄을 서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바뀐 도라야키의 인기와 함께 일상에 무기력했던 사장 ‘센타로’의 얼굴도 점차 밝아진다. 봄이 지나 여름의 끝자락, 차가워진 공기처럼 가게의 손님들이 갑자기 뚝 끊긴다. ‘도쿠에’ 할머니는 그 이후 가게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단골 소녀 ‘와카나’의 실수로 할머니의 비밀이 소문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센타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센타로’와 ‘와카나’는 ‘도쿠에’ 할머니를 찾아가게 되는데…


“사장님 언젠가는 사장님만의 특별한 도라야키를 만들어낼 거라 믿습니다.


스스로 개척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사장님은 해낼 수 있어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중


새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 3월은 새로운 의미의 ‘시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도라야키 가게 주인 ‘센타로’는 꼭 우리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 이와 달리 ‘도쿠에’ 할머니는 일상의 모든 것들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도, 지저귀는 새소리에도, 따사로운 햇살에도 관심을 갖는 ‘도쿠에’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 좀 더 특별해지고, 소중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팥에 담긴 ‘도쿠에’ 할머니의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 달콤한 울림을 준다. 밭에서부터 힘들게 온 팥들을 극진히 모셔야 하며, 익힌 팥은 으깨지기 쉬우니까 천천히, 살살 다뤄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과 팥들에게 “힘내서 잘해봐!” 응원을 보내는 장면은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영화 내내 ‘도쿠에’ 할머니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와 할머니로 인해 점차 밝게 변해가는 ‘센타로’와 ‘와카나’의 모습은 따뜻한 도라야키를 한 입 베어 문 듯 나를 미소 짓게 했다.


‘도쿠에’ 할머니가 툭툭 내뱉는 대사 하나, 하나에는 그녀가 맞서온 쓰디쓴 현실을 달랠 수 있는 인생의 달콤함이 묻어난다. ‘도쿠에’ 할머니 역을 맡은 일본의 국민 배우 ‘故키키 키린’은 암 투병 중에도 영화 촬영을 진행했고, 이 영화가 개봉하고 3년 뒤인 2018년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그녀의 연기는 묘하게 ‘도쿠에’ 할머니의 모습과 겹치며 편견과 상처에 힘든 이들의 마음을 토닥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햇빛이나 바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지난밤엔 울타리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사장님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속삭이는 듯 느껴졌어요. 아무 잘못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또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지요. 이런 인생 이야기도 들려줄 걸 그랬어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중


학교가 재미없다며 투정부리는 여학생들에게 그러면 재미있게 바꿔보라며 그냥 다 냅두고 놀아도 보라고 말하는 말은 대책 없이 던지는 말이 아니라 오랜 삶을 산 어른으로서의 연륜이 묻어 나온다. 그렇게 살면 집에서 쫓겨난다고 걱정하는 학생들의 말에 그럼 하루만 집을 나가라고 하며,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라고 우린 자유로운 존재라는 그녀의 말은 삶이 영원할 것처럼 일상을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특유의 위트로 인생의 여유를 불러일으킨다.


‘도쿠에’ 할머니는 바람에 흐드러지는 벚꽃들을 보며 말한다. “다들 손을 흔들고 있어. 안녕, 안녕!”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 되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만의 작은 기대감과 감사함을 마음에 품고 따스한 봄을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


따뜻해진 바람결, 출근길 나뭇가지에 피어난 초록 잎 하나, 퇴근길 길어진 햇살의 시간까지. 다가오는 봄날에는 동아약보 독자들에게 순간 순간 찾아오는 일상의 특별함이 따뜻하게 피어나길 바란다.


“잊지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