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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주치의] 하늘과 바람과 별을 떠올리다 시인 윤동주

작성자
admin
2021-09-27
조회
469

하늘과 바람과 별을 떠올리다 시인 윤동주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그가 남긴 시를 읽을 때마다 오랫동안 간직한 추억과 더불어 지나온 삶을 반추하게 된다.


문학 소년의 꿈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목사인 외삼촌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릴 적부터 문학에 소질이 있어서 5학년 때 친구들과 같이 등사판 잡지 『새명동』을 만들어 동시를 발표했다. 1932년 그는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뒤 친구들과 모여 문예지를 만들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후 1935년 9월 평양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재학 중에 시 15편을 썼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로 숭실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고, 그는 문익환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1936년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시 50여 편을 썼다.


 


삶의 고뇌에서 나온 말과 글

그는 문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1938년 경성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로 진학했다. 그가 입학한 해는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고, 한민족을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때였다. 그의 고뇌는 깊어져 갔고, 1939년 한 해 동안 쓴 시는 6편에 불과했다. 이때 그가 쓴 「자화상」은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일제의 탄압이 심했던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 「서시」, 「별 헤는 밤」 등의 시를 썼으며, 졸업 기념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인 자선 시집을 한정판으로 출간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선어로 된 시집을 출간하기 어려웠던 때라 주변의 만류로 출간을 못하게 되자 원고 세 부를 자필로 작성해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각각 한 부씩 전했다.


 


독립에 대한 소망을 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학문을 더 쌓기 위해 유학을 하기로 결심했고, 1942년 도쿄 릿쿄대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그가 평소 존경했던 시인 정지용이 다닌 교토 도시샤대 영문과로 편입하게 됐다. 당시 도쿄의 대학에서는 교련 수업을 받아야 했고, 그는 교련 수업을 거부하다 고초를 당했다. 더구나 도쿄의 대학에 다니는 재학생은 학도병에 참가해야 했기 때문에 교토로 편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고종사촌 송몽규와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1943년 일본제국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고향에 있는 동생들과 엽서를 주고받으며 옥중생활을 버티다가 안타깝게도 1945년 2월 일제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시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정직하게 표현했으며 민족 의식을 일깨웠다. 시에서 묻어 나오는 맑은 감성이 그의 모습 속에서도 비춰졌다. 항상 미소를 지었으며 밤에 공부를 하거나 시를 쓰다가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떳떳한 삶을 살겠다는 그의 다짐을 떠올려보며 매일매일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을 값지게 살았으면 한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