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동아주치의] 건축의 개념을 다시 보다

작성자
admin
2021-08-25
조회
441

건축의 개념을 다시 보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아파트를 최초로 선보인 20세기 주거 혁명의 선구자 르 코르뷔지에. 그에게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였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편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세대가 주거난을 겪고 있는 현재, 그가 내세운 건축과 도시의 개념을 조명해보며 미래의 도시와 건축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다시 보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1887년 스위스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은 외할아버지의 이름(Le corbésier)을 변형한 것으로, 파리로 이주한 후 1920년부터 필명으로 사용했다. 그는 13세 때 미술 학교에 다니며 시계 장식과 조각 공예를 배웠다. 그는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스승 샤를 레플라트니에의 권유로 17세부터 건축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건축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시계 장식만 하기엔 아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유럽의 산업화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스승이 소개한 건축가 샤팔라에게 건축을 배웠고, 첫 작품으로 팔레 주택을 설계했다. 그러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철근 콘크리트의 선구자인 오귀스트 페레에게 건축을 하는 데 필요한 최신 재료와 기술을 배웠고, 보헤미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여러 나라로 여행을 다니며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됐다.


현대 건축의 5원칙을 확립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제1, 2차 세계대전 전후다. 191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철과 시멘트의 활용 가능성을 접하고, 공업화, 기계화 시대에서 자신만의 건축 이론을 정립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현대 기술을 사용한 건축 이론을 연구했는데, 그 이론 중에는 돔-이노(Dom-Inno, 집의 라틴어 ‘도무스(Domus)’와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결합한 단어) 구조가 포함된다. 이는 건물의 벽체와 지붕을 구조체와 분리하여 모든 하중을 기둥이 지탱하는 것이며, 내부 입면이나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그 당시 유럽 건축은 벽으로 건물의 무게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두꺼운 벽이 많이 필요했고 창문을 작게 하거나 위아래로 길게 내야 했는데, 그의 이론에 따르면 벽이 없는 대신 창문, 지붕, 바닥을 마음대로 낼 수 있었다. 그는 이 구조를 바탕으로 ‘현대 건축의 5원칙’을 확립하였다. 이 원칙에는 필로티 구조, 자유로운 파사드(Façade), 수평 창, 열린 평면, 옥상 정원이 있다. 그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물 중 현대 건축의 5원칙을 가장 미학적으로 반영한 것이 ‘빌라 사보아’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 중 하나, 건축.

이것은 행복한 사람들이 만들어냈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행복한 도시에는 행복한 건축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


 


도시화가 낳은 문제를 해결하다

그가 살았던 당시 유럽의 도시는 산업혁명으로 극심히 열악했다. 그는 교통 체계를 높은 위계에 두고, 주거 지역과 사무 지역을 구분하여 쾌적한 생활을 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대다수 유럽인들은 그의 도시계획을 반대했지만, 주택 수요를 충당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한 정책가들은 대도시와 외곽에 아파트를 대량 건축하는 방식으로 그의 계획을 반영했다. 그 결과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프라하 등의 도시는 아파트 천국이 되었으며, 서구권 국가 역시 교외 신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그의 계획을 실현하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신도시는 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가정은 삶의 보물 상자가 되어야 한다.”

-르 코르뷔지에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생활 환경을 만들어 주다

그의 도시 설계 모델은 현재의 도시 구조를 그대로 제시하고 있으나 그가 활동 초기에 설계한 건물은 사람과 공간의 황금 비율을 따질 정도로 이성적이었으며, 기능과 기술 중심으로 모든 것을 계획했기 때문에 다양성, 감성 등을 무시한 경향이 있다.

한편 그의 후기 건축물에서는 심미적 특징이 두드러진 변화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후기 건축물인 ‘롱샹 성당’은 규격화된 건축이 아닌 대지의 조건에 따라 설계되었으며, 점차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시도를 했다. 나아가 그는 이론만을 내세우지 않고 ‘에스프리누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이 잡지에 실린 그의 글은 1923년에 ‘건축을 향하여(Toward an Architecture)’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이 책은 지금까지도 건축가들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특히 2016년 유네스코는 그가 설계한 프랑스, 벨기에, 독일, 스위스, 일본, 인도, 아르헨티나 등 7개 국에 있는 17개의 건축물을 ‘The Architectual Work of Le Corbusier’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는 전쟁, 도시화 등 주택난을 겪는 상황에서 기능적으로 주거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시대적, 사회적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제부터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그가 추구한 혁신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옛것을 다시 보고 현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며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