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동아세포마을] 고령화 시대, 의료진 머리에 쥐날 듯한 고민

작성자
admin
2023-03-08
조회
125

고령화 시대, 의료진 머리에 쥐날 듯한 고민


글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한국은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 2050년에는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고령 인구는 갈수록 늘지만 고령자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건강한 상태의 기간을 말하는 건강 기대 수명은 그리 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응급실에서는 그 변화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령 환자일수록 과거 병력과 평소 상태가 중요


환자 연령이 매년 높아지면서 요양병원, 요양원에서 응급실로 이송되는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료진들은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가령 평소 먹던 약,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련 질환, 전신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응급실에 온 환자를 진료할 때 아무 정보가 없다면 어떨까요?


젊은 사람이 의식이 있는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올 경우 의료진은 환자와 직접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호자 없이도 명확한 증상과 관련 사항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응급실로 실려온 다수의 고령 환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중증 치매가 있거나 기력이 너무 떨어져서 눈만 겨우 뜨고 있거나 의식이 떨어져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보호자가 도착하더라도 환자의 상태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면회가 어려워 그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지난주에 뵈었을 때엔 큰 이상 없이 걸어 다니셨어요.”라는 진술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환자의 상태가 평소에도 그랬는지 아니면 최근에 나빠진 건지, 또는 내원 직전에 갑자기 변화가 생긴 건지 알아야 검사 범위와 응급한 정도를 정할 텐데 이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오신 요양원 할머니 사연


어느 날 119 신고로 응급실에 실려온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인근 요양원에서 지내시던 분으로 상태가 안 좋아 119를 불렀다며 행정 직원과 함께 도착해서 접수를 하셨습니다. 의료진이 할머니를 불러도 반응이 없고 통증을 줘도 겨우 움찔할 정도로 의식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가래가 있고 산소포화도 수치가 낮아 산소마스크를 먼저 달고 혈압과 맥박을 측정해 보니 상당히 낮은 상태였습니다.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에서 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처럼 같이 온 보호자는 없었고 동행한 행정 직원은 환자의 과거력과 평소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의료진은 환자의 가래와 낮은 산소 수치, 낮은 혈압으로 보아 폐렴에 의한 패혈성 쇼크를 의심했고 동시에 양쪽 팔, 다리의 둔한 움직임을 보아 뇌졸중 등 머리 쪽 원인에 의한 의식 저하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또한 언제부터 식사를 잘 못하셨는지, 간 기능과 콩팥 기능은 어떤지 확인해야 했기에 뇌 CT, 폐 CT 검사와 더불어 혈액 검사, 심전도 검사, 소변줄 삽입 및 소변 검사를 처방했습니다. 친가족 보호자가 없으니 과거력과 평소 상태를 파악할 수 없고 처방에 관한 동의를 받을 수 없어 원활한 산소 공급을 위한 기관 삽관 및 인공호흡기 여부를 결정하기 난감했습니다. 특별한 과거력이 없고 환자 보호자가 치료에 적극적이라면 빠르게 기관 삽관과 인공호흡기를 착용하는 것이 환자 예후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말기 암 또는 중증 치매로 생명 유지 치료를 거부한 환자일 수 있어 보호자와 상의가 필요했습니다.


 


보호자의 연락으로 다음 처치 진행


일단 위 사항들을 결정할 보호자가 곁에 없으니 산소마스크로 최대한 생명을 유지하면서 검사를 먼저 진행했습니다. 그 사이에 행정 직원이 보호자에게 빠르게 연락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검사 결과 할머니 상태는 심한 흡인성 폐렴(음식물 등이 기도로 넘어가 발생한 폐렴)과 패혈성 쇼크, 심각한 전해질 이상과 콩팥 부전이 확인되었습니다. CT와 MRI 검사에서 이상이 없는 걸 보니 의식 저하의 원인은 패혈성 쇼크에 의한 혈압 저하와 심한 전해질 이상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입원 경과 중 콩팥 기능이 돌아오지 않으면 투석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보호자와 연락이 닿아 특별한 과거력이 없었고 평소에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잠시 미뤄두었던 기관 삽관과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면서 중환자실에서 항생제 치료와 전해질 교정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보호자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여 중환자의학과에 환자를 인계하고 다음날 주치의 면담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드렸습니다. 초기 3~4일 내에는 중증 폐렴과 패혈성 쇼크에 의한 심정지 등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위기를 넘기면 치료가 원활하게 가능할 것 같다는 말에 보호자도 전화를 통해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응급실의 풍경이 변한 만큼 현장에서 의료진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머리에 쥐나도록 환자의 상태 파악을 위해 여러 사항들을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 고령의 환자와 응급실 방문 시 주의점 3가지


① 119 구급차에 환자만 응급실로 보내지 말고 보호자가 함께 탑승해 주세요.


의식이 떨어진 환자나 고령, 기저 질환으로 자기 상태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환자는 응급실에서 초기 처치를 받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환자 상태를 잘 아는 보호자가 함께 방문해 무슨 문제로 응급실에 왔는지, 평소 상태는 어땠는지, 원래 다니는 병원에서 최근 어떤 검사를 해서 어떤 결과를 받았는지 알려준다면 검사를 빨리 시행할 수 있습니다.


 


② 암이나 투석 등 원래 다니던 병원이 있는 기저 질환 환자의 경우 해당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주세요.


개인 의료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철저하게 보호되고 환자의 허락 없이는 외부로 유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서 작성된 의료 정보는 다른 병원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흔한 만성 질환이 아닌 치료 중인 암이나 최근에 시행한 수술 등 원래 다니던 병원이 명확하게 있는 경우에는 조금 멀더라도 해당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여 진료 기록에 의거해 응급 처치를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물론 증상이 심해 먼 거리로 다니던 병원에 방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까운 응급실부터 방문해 응급 처치를 받고 전원을 가는 것이 좋습니다.


 


③ 평소 복용하던 약을 챙겨와 주세요.


고령 환자의 경우 평소 앓던 질환이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주변에 보호자가 없거나 환자가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 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평소 복용하던 약을 챙겨오면 환자의 최근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동아약보 2023년 3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