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문화재단 후원, 제37회 마로니에 전국여성 백일장 개최
매년 가을 문학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이 올해도 찾아왔다. 마로니에 공원의 높은 하늘 아래 여유를 만끽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원고지에 풀어낸 여성들. 가을 풍경 물씬 전해지는 그 현장을 소개한다.
올해로 37번째를 맞은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은 국내 최장수 여성 백일장으로도 유명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동아제약, 동아ST, 수석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매년 가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시/산문/아동문학 3개 부문에서 장원으로 선정되면 주요 문예지에 등단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에 문학의 관심을 둔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참가자는 예년보다 많은 455명. 맑은 가을 날씨와 참가자들의 시상을 자극하는 마로니에 공원의 풍경이 어우러져 훌륭한 작품이 많이 배출되었다.
▲ 수석문화재단 박광순 이사장이 참가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다
▲ 현장에서 직접 추첨을 통해 선정된 글제들
개회식에서 추첨을 통해 선정된 글제는 '약속/가방/어제/일기장'이었다. 참가자들은 주어진 창작 시간 동안 각자의 인생작을 만들기 위해 나무 그늘 밑으로 근처 카페로 조용한 강의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원고 접수가 마감된 2시부터는 문학강연 문보영, 김복희 시인의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네'와 뮤지션 '키니', 히든싱어 이문세 편의 우승자인 '안웅기' 씨가 출연한 '옛사랑' 가을 콘서트, 경품 추첨 이벤트가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백일장 참가자들은 각 부문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긴장과 설렘,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창작에 매진한 참가자들
▲ 문학강연과 가을 콘서트 현장
오후 5시에 열린 시상식에는 동아쏘시오홀딩스 한종현 사장, 동아제약 최호진 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종관 위원장과 심사위원들이 참석했으며, 각 부문 장원을 비롯한 수상자가 발표됐다.
시상에 앞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수필가 최장순 작가는 "17명의 심사위원들은 여러분의 작품을 읽으며 많은 감동과 기쁨을 맛보았다. 제출된 작품들의 수준이 매년 높아짐을 느낀다. 장원으로 선정된 작품은 일상에서 찾아낸 소재를 참신하고 새로운 발상으로 풀어내며,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낸 것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뿐만 아니라, 백일장에 참가해준 모든 여러분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심사평을 전했다.
시, 산문, 아동문학 각각의 장원으로 유태양, 남설희, 최원실 씨가 선정됐다. 각 부문별 장원 1명, 우수상 1명, 장려상 3명, 입선 5명을 비롯해 특별상 2명을 포함하여 총 32명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마로니에 전국여성 백일장에서는 입상자에게 총 상금 2,000여만 원의 시상금과 상품을 전달했으며, 참가자 전원에게는 동아제약의 박카스맛 젤리 등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했다.
<마로니에 전국여성 백일장 장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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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장원 유태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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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부분 장원 남설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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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부문 장원 최원실 몸이 아파 옴짝달싹 못 하고 갇혀 지낸 시간이 좀 길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주변에서는 자꾸 괜찮다고 별것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괜찮지 않았습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동화를 통해 나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 시 장원 작품>
암묵적 약속
유태양
접시에 물을 받고 달그림자를 담았다.
달도 부위별로 다른 맛이 날까?
염소처럼
달이 접시에서 튀겨지고 있다.
회색빛 살갗이 노랗게 익어간다.
내가 담았던 것은 기름이었나
우리는 암묵적으로 식탁에 앉아
창문 너머 달을 보면서 숟가락으로 물을 떠먹었다.
달을 먹은 날에는
몸이 무언가의 알로 가득찼다.
생각했다.
부화장치가 된 나의 내장
알을 까고 내장을 걸어다니는 다리들
이빨 사이로 눈이 들어차는 기분
곁눈질을 하면
안개가 축축하게 꼈다.
창문틈을 비집고 안개가 들어찬다.
나는 젖는다.
짠맛이 난다.
나는 왜 안개의 맛을 알고있는가
혓바닥이 거짓말을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안개와 혓바닥의 약속이었을까
왜 아무도 의심하지않나.
뱀의 혀는 간사하다던데
나는 울고 너는 웃었다.
사라지는 달을 보면서
너는 어둠이 차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잘리는 달을 생각하고
너는 빛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했다.
배를 가르는 상상을 하면
싱크대 위로 알을 토해냈다.
나는 싱크대 구멍으로 흘려보내는 일을 반복하고
너는 구멍에 스피커를 달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언제 이런 약속을 했을까
병뚜껑에 물을 따라 마시기로
우리의 구도는 자꾸만 엇나가기로
먹을 수록 차오르기로
달이 뜨면 머리가 젖었고
달이 지면 머리가 말랐다.
그래, 이건 달과 머리카락의 약속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염소가 부패하면 무슨 맛이 나는지
썩은 포도는 여전히 포도인지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항상 북쪽인지
접시에는 물이 있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 달을 비춘다
기름냄새가 난다.